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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Pizza)는 그릇처럼 사용되었다.

by 팔딴 2023. 6. 20.

세계인이 사랑하는 피자

피자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패스트푸드입니다. 집에서, 레스토랑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어디에서나 그것을 먹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거 아셨나요? 피자는 원래 접시였습니다.

 

1. 접시

빵을 맨 처음 만들어 먹은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밀과 보리를 반죽(kneading)해서 뜨겁게 달군 돌 위에 올려 익히는(baking) 조리법을 개발했습니다. 최초의 빵입니다. 최초의 빵은 납작하게 생겼습니다. 메소포타미아 근처에 살던 트로이인들도 납작빵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이 빵을 포카치아(focaccia)라고 불렀고 먹기도 했지만 음식을 담는 접시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청동 그릇은 무거운 데다가 귀해서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납작빵이 그릇으로 이용되었던 모습은 베르길리우스의 장편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트로이의 장군인 아이네이스와 그의 군인들은 라티움(Latium)에 도착했을 때 매우 허기져 있었습니다. 통보리로 만든 커다란 포카치아 위에 과일과 음식을 듬뿍 올려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웁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고도 배가 고파 포카치아까지 뜯어 먹습니다. 아이네이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 봐! 우리는 접시까지 다 먹었어!" 그리스에서도 납작빵을 그릇으로 사용했고 이 납작빵을 피타(Pita)라고 불렀습니다. 피자의 어원으로 추정되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는 기원전 730년부터 130년까지 약 600년 동안 이탈리아 남부를 다스렸습니다. 바로 이때 네아폴리스(Neapolis) 그러니까 나폴리(Naples)로 그리스 피타와 트로이 포카치아가 전해졌습니다.

 

2. 가난한 사람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피자가 생긴 것은 18세기 나폴리에서였습니다. 당시 나폴리 왕국의 수도였던 나폴리는 유럽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18세기 들어 인구가 너무 많이 늘자 식량이 부족해졌고 수많은 빈민들이 양산되었습니다. 빈민들을 먹일, 값싸고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만든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만만한 것은 마늘, 라드, 소금이었고 치즈나 바질 등도 활용할 만했습니다. 아메리카에서 전해진 토마토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물 건너 온 이 수상쩍은 채소를 의심스러워했고 따라서 토마토의 가격은 무척 낮았습니다. 당시 나폴리의 노점상들은 크고 넙적한 밀가루 반죽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재료들을 올려 구웠고 조각으로 잘게 잘라 팔았습니다. 나폴리의 빈민들은 1페니만 내면 피자 조각 하나를 사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빈민층 이외 사람들에게 피자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진 않았습니다. 그들이 빈민들을 보며 혐오에 찬 시선을 보낼 때 그 시선은 종종 빈민들이 들고 있는 음식으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3. 마르게리타

피자에 대한 인식이 바뀐 건 19세기 후반부터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분열되어 있었는데 북부 샤르데냐 왕국을 중심으로 드디어 통일을 이뤄냈던 시기였습니다. 통일 직후인 1889년 이탈리아의 왕 움베르토 1세와 여왕 마르게리타가 처음으로 나폴리를 방문했습니다. 들은 나폴리 특색의 요리인 피자를 먹어보고 싶어했습니다. 다 피에트로(Da Pietro)라는 피제리아를 운영하고 있던 라파엘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가 나폴리 궁에 초대되었습니다. 에스포지토는 왕과 여왕을 위해 세 가지의 피자를 준비했습니다. 여왕은 그중 한 피자를 특히 마음에 들어 했고 에스포지토에게 피자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피자의 역사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에스포지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르게리타' 그 피자는 토마토(Tomato), 모차렐라(Mozzarella), 바질(Basil)을 토핑으로 올려 만든 것이었고 에스포지토는 토핑의 색깔이 이탈리아의 국기 색깔과 똑같다는 데 착안 피자에 이탈리아 여왕의 이름을 붙였던 겁니다. 에스포지토의 아부는 통했습니다. 마르게리타 여왕은 에스포지토의 대답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고 그때부터 이 피자는 마르게리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마르게리타 피자

4. 정체성

마르게리타 피자는 두 가지의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첫째는 피자가 빈민들에게만 어울리는 음식에서 상류층이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격상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람들로 하여금 피자를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사실 20세기 초반까지도 피자는 나폴리(Naples) 밖을 나오지 못했습니다. 로마(Rome), 피렌체(Florence) 등 북부에서는 피자를 먹어본 것은 고사하고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죠. 북부에서 피자를 먹기 시작한 건 엉뚱하게도 미국(United States) 때문이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에선 나폴리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만의 독특한 피자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얇고 큰 도우에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치즈 페퍼로니를 올려 굽고 손으로 집어 먹는 뉴욕 피자. 두껍고 작은 도우에 소스와 토핑을 왕창 넣어 포크와 칼로 썰어먹는 시카고 피자가 대표적인 미국식 피자입니다. 미국인들이 피자를 먹는 모습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되었고 미국 문화를 동경하던 이탈리아 북부의 젊은이들이 피자를 적극 받아들이도록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힘이 역사적 진실을 덮어버렸습니다. 마르게리타 피자가 이탈리아를 상징한다는 스토리텔링은 워낙 강력해서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뇌리에 피자와 이탈리아를 찰싹 붙여놓았던 겁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는 오래전부터 피자를 먹어왔고 또 좋아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은 아니지만 상식이란 게 대개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 아주 당연한 상식이 됩니다.

 

5. 에필로그

입맛을 공유한다는 건 가장 원초적인 차원에서 동질감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친구, 동료를 뜻하는 영어단어 'Company'는 [Com: 함께 / Pane: 빵 / ia: 먹는 것] 빵을 함께 나누는 사이라는 원뜻을 품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분열되어 있았던지라 지금도 남부와 북부 간의 갈등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인이 '이탈리아'라는 정체성으로 묶일 수 있는 데는 피자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