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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by 팔딴 2023. 6. 22.

커피를 맨 처음 마신 사람은 에티오피아인들이었습니다. 커피라는 단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투르크어 카베(kahveh), 페르시아어 케베(qehve) 아랍어 콰와(qwawa), 그리고 에티오피아어 카파(kaffa)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카파는 에티오피아의 지역 이름입니다. 또한 커피나무의 원산지이기도 하구요.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에티오피아인들은 커피(coffee)를 잘게 갈아 버터(butter)같은 동물성 지방과 섞어서 에너지바의 형태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최초의 커피 레시피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티오피안 사람들

1. 이슬람

7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 커피는 무슬림(muslim)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525년 에티오피아(Ethiopia)는 예멘(Yemen) 지방을 침략합니다. 추정하는 바에 따르면, 바로 이때 커피나무가 예멘으로 건너갔죠. 그리고 예멘에서도 이때 건너간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무함마드, 그리고 이슬람교

610년, 무함마드(Muhammad)는 이슬람교를 창시했고 커피는 무섭게 확장하던 이슬람제국의 위세에 올라타며 시리아(Syria), 이집트(Egypt),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등지로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이 커피를 사람들은 '모카 커피(Mocha Coffee)'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생산된 커피가 일단 예멘의 모카(Mocha)항에 집결한 뒤 각지로 수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카(Mocha)는 예멘의 홍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국제적인 커피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커피콩을 로스팅(roasting)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수출의 영향이었습니다. 예멘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수출품이었던 커피의 종자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엄격히 금했습니다. 커피 '콩', 커피 '원두'라고 흔히 말하긴 하지만 커피는 엄연히 열매 안에 들어있는 씨앗입니다. 씨앗을 땅에 심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햇빛과 비를 양분으로 나무가 자라게 되겠죠. 그런 이유로 예멘 사람들은 커피 종자의 유출을 막기 위해 커피콩를 볶아서 팔기 시작했고 로스팅의 전통이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 카흐베카네

세계 최초의 카페, 카흐베카네

커피는 점점 퍼져나가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의 수도 이스탄불(Istanbul)에서도 인기를 얻게 됩니다. 1554년 세계 최초의 카페, 터키어로 말하면 카흐베카네(kahvehane)가 이스탄불에서 문을 엽니다. 카흐베카네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었지만 그저 커피만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고 체스를 두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죠. 이스탄불에 주재했던 유럽의 외교관들도 이곳에서 커피를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상당한 커피홀릭이 되어 있는 사람도 있었죠. 커피는 그렇게 점점 유럽에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3. 사탄의 음료

커피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이 썩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는 과거 6백여 년간 치열하게 싸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럽인들은 커피를 사탄의 음료(Satan's brew)라고 부르기도 했고 무슬림들이 개발한 독(poison)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1603년 교황 클레멘스 8세(Pope Clemens VIII)가 나섭니다. 근데 커피가 너무 맛있었습니다. 교황은 직접 커피를 마셔보고 그 맛에 반해버립니다. "이 사탄의 음료는 너무 맛있어서, 이걸 이교도들만 먹게 놔둘 수가 없다." 라고 하면서, 커피를 금지하기는커녕 커피에 세례(baptizing)를 내려 커피를 기독교인의 음료로 공인해버립니다. 이때부터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커피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1615년부터 베네치아(Venice) 상인들은 (모카에서) 커피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유럽 전역으로 수출했습니다.

 

4. 계몽

세시대 유럽은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와인이 종교의식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럽에서 알코올 중독은 꽤 큰 사회적 문제였습니다. 커피는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17세기 초부터 유럽에 생겨나기 시작한 카흐베카네. 그러니까 커피하우스(coffee house)에선 학구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작가, 정치인, 기업가, 과학자 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죠. 커피하우스의 확산은 그 수요를 충당할 만큼 커피가 충분히 공급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모카커피 생산량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당대의 상업강국이었던 네덜란드(Netherlands)가 나섭니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Indonesia) 자바 섬을 식민지로 삼고 그곳에 대규모 커피 농장을 건설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바커피 생산량은 모카커피 생산량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모카커피와 자바커피의 이중 공급이 있었기에 커피 문화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질 수 있었습니다.

 

5. 혁명

커피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프랑스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 파리의 카페에선 커피 말고도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분노'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크게 두 개의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귀족(nobles)으로 대표되는 중세시대부터 내려온 구세력. 그리고 부르주아(bourgeois)로 대표되는 근대 들어 상공업으로 부를 거머쥔 신흥세력. 파리의 카페에선 귀족들의 특권에 분통을 터뜨리는 부르주아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신들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세금으로 꼬박꼬박 바치는데 귀족들은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놀고 먹는 게 아니꼬았던 겁니다. 파리의 카페는 경제적 불만을 정치적 불만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데 특화된 사람들이 커피를 홀짝이면서 경제적 불만을 유와 평등이라는 정치적 주장으로 연결짓습니다. 경제적 불만이 정치적 불만과 만나자 대폭발이 일어납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Frnech Revolution)이었습니다. 혁명 이후 프랑스 의회는 봉건적 특권의 폐지를 선언했고 이어서 인권 선언을 발표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또한 살아가는 동안 자유이며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오늘날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가치인 '자유(free)'와 '평등(equal)'의 개념이 명문화되었습니다.

 

6. 에필로그

카페는 혁명의 대학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을 훈련했습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각성한 사람들은 결국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발견해냅니다. 커피는 중세를 끝내고 근대를 연 새 시대의 동반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