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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발전사를 알아봅시다.

by 팔딴 2023. 6. 11.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모든 순간 바리스타는 세 가지 룰 앞에 섭니다. 룰 하나, 어디에서 생산된 원두를 선택할 것인가? 룰 둘, 그렇게 고른 원두를 얼마나 볶고 어떤 방법을 이용해 물로 우려낼 것인가? 룰 셋, 어떤 재료들을 추가해 커피를 완성할 것인가? 아메리카노든 라떼든 커피도 요리처럼 지켜야 하는 룰이 있고 좋은 바리스타는 그 룰을 철저히 지켜 좋은 커피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룰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각각의 시작점에는 세 명의 바리스타가 있었습니다. 룰을 지켜 맛있는 커피 커피음료 바리스타룰스와 함께 커피의 역사를 바꾼 세 명의 바리스타에 대해 알아봅시다.

 

1. 알 다바니

인류가 커피를 먹는 최초의 방법은 음료가 아니었습니다. 열매였죠. 약 30만 년 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프리카 일대를 활보하고 다녔을 때 그들 근처에는 빨간 열매를 맺는 커피나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새들이 커피 열매를 먹는 것처럼 우리 조상들도 열매의 새콤달콤한 맛을 알았을 가능성은 꽤 높습니다. 열매를 먹으면 묘하게 정신이 맑아진다는 사실도 따라서 꽤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커피열매를 음료로 만들 생각을 한 최초의 바리스타는 누구였을까요? 9세기 페르시아의 의사 알 라지(Al-Razi)가 음료로서의 커피를 최초로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쉽게도 그 기록은 현재 전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시는 커피를 최초로 대중화했던 사람도 그가 아니죠. 그 주인공은 15세기 예멘의 바리스타, 알 다바니였습니다. 당시 '수피'라는 이름의 이슬람교 신비주의 분파는 밤을 새우며 신을 만나는 의식을 진행하곤 했습니다. 이때 '캇'이라 불리던 잎으로 차를 달여 마셨는데요. 캇에는 정신을 맑게 하는 각성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음료를 콰와(qahwah)라고 했죠.

콰와(qahwah)
커피열매를 끓는 물에 넣어 음료의 형태로 마셨던 콰와(Qahwah). (출처: 유튜브 채널 '아이오IO')

하지만 캇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캇이 고지대에서만 자라는데 쉽게 상해서 멀리까지는 운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선한 캇을 구하기가 어려워 그 대체재를 찾아야 했죠. 이런 상황에서 알 다바니가 주목한 것이 바로 커피 열매였습니다. 커피 열매도 캇처럼 각성효과를 갖는 데다 말리면 먼 거리를 운송해도 끄떡없었기 때문입니다. 알 다바니는 말린 커피 열매를 물에 넣고 끓여서 음료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 음료 또한 '콰와'라고 불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커피'라고 부르는 음료의 작점입니다. 이후 콰와는 말린 열매를 통째로 이용하는 대신 열매 안에 들어있는 씨앗만 구워서 음료를 추출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음료는 예멘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뒤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죠. 15세기 말 메카와 카이로의 아랍인들에게 16세기 초 이스탄불의 터키인들에게 그리고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에도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파 과정에서 단어도 점점 변화를 겪어서요. 아랍어 '콰와'는 터키어 '카베', 이탈리아어 '카페', 독일어 '카피', 프랑스어 '카페', 영어 '커피' 등으로 파생되었습니다. 또 17세기 말까지 커피는 대부분 동아프리카나 아라비아반도 일대에서 생산되었는데요. 이 원두들은 일단 예멘의 모카항으로 모인 뒤 이곳에서 다시 다른 지역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모카'라는 말은 커피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17세기 말 자바 섬에서 18세기 들어 카리브해나 브라질 등에서도 커피가 생산되면서 커피의 산지는 점차 다양해졌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원두는 산지의 기온과 강우량, 일조량, 토양의 성분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맛과 향을 지녔고 그것은 그대로 커피의 개성이 되었죠.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첫번째 룰 만들고자 하는 커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원두를 찾을 것 이 룰은 15세기 초 예멘의 바리스타 알 다바니의 제안에서 출발했습니다.

 

2. 드 벨루아

17세기에 커피가 유럽으로 전해진 뒤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커피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커피가 비교적 다양한 곳에서 생산되고 있었던 19세기 초까지도 커피를 만드는 법 자체는 비교적 단조로웠습니다. 커피 자체가 이슬람 세계에서 전해졌던 만큼 유럽인들도 처음에는 이슬람의 방식대로 커피를 즐겼습니다. 체즈베(Cezve)라고 불리던 주전자에 분쇄한 원두와 물을 함께 넣고 끓였죠. 하지만 이렇게 하면 커피 가루가 음료 안에 그대로 남아있어 상당히 묵직한 질감과 좀 텁텁한 입맛을 남겼습니다. 18세기에 프랑스에서는 커피가루를 걸러내는 방식이 개발되긴 했지만 제대로 되진 않아서 커피가루는 여전히 음료 안에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최초로 반전시켰던 인물이 19세기 초 프랑스의 바리스타, 드 벨루아였습니다. 1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드 벨루아는 커피가루를 비교적 완벽하게 걸러내는 새로운 추출기구를 고안해냈습니다. 이 기구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면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깔끔한 질감의 커피를 얻을 수 있었죠.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커피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이끌었습니다. 어디에서 생산된 원두를 선택할 것인가뿐 아니라 어떤 방법을 이용해 음료로 추출할 것인가 또한 커피 맛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달았던 겁니다.

커피추출기
19세기 초부터 커피가루를 걸러내어 추출하는 방식으로 커피를 즐겼습니다. (출처: 유튜브 채널 '아이오IO')

때문에 드 벨루아 이후 유럽에는 사이폰, 에스프레소 머신, 드립, 프렌치프레스, 모카포트 같은 다양한 추출기구들이 앞다퉈 등장하기 시작했죠. 이제 바리스타들은 추출법을 달리함으로써 커피 맛에 섬세한 차이를 덧입히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이 되면 원두를 어떻게 추출할 것인가에서 더 나아가 원두를 어떻게 볶을 것인가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바리스타들이 등장합니다. 원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서도 원두는 전혀 다른 맛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에 미국 버클리에 살던 네덜란드 출신의 바리스타, 알프레드 피트는요 원두를 강하게 볶아 까매질수록 신맛은 약해지고 쓴맛이 강해져 진정한 커피의 맛이 우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에 미국 보스턴에 살던 바리스타 조지 하웰은 원두를 약하게 볶아 원두가 본래 갖고 있던 신맛과 고유의 풍미를 발현시키는 것이 진정한 커피의 맛이라고 믿었죠. 때문에 오늘 우리는 둘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선택을 합니다. 예를 들어 스모키한 향미와 중후한 질감이 특징인 인도네시아 만델링 원두를 커피로 추출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원두를 숯불 위에서 강하게 볶아 숯불 향을 입힌 뒤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해 오일인 크레마까지까지 추출하면 원두가 기존에 갖고 있던 향미와 질감을 강화해 풍부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편 부드러운 산미와 단맛의 조화가 좋은 엘살바도르 SHG 원두를 이용한다면 다른 접근법을 취해야 합니다. 절반은 적당히 절반은 강하게 볶은 뒤 플라넬 드립을 이용해 추출하면 커피 고유의 단맛과 부드러운 산미를 살리면서도 밸런스가 잘 잡힌 커피를 뽑아낼 수 있죠.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두 번째 룰 원두를 얼마나 볶을 것인지 그리고 어떤 추출법을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할 것 이 두 번째 룰은 19세기 초에 프랑스의 바리스타 드 벨루아의 제안에서 출발했습니다.

 

3. 게오르그 콜시츠키

커피는 좀 모순적인 음료입니다. 커피 맛에 심취해 맛의 섬세한 차이를 따지는 마니아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는 여전히 커피 맛과 친해지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죠. 처음에 커피를 맛볼 때는 다소 쓰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니까요. 커피가 유럽에 막 전해지기 시작했던 17세기 말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뒤 유럽까지 넘보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던 오스만 제국 제국의 군대가 동유럽을 넘어 서유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과도 같은 곳이 바로 빈이었습니다. 때문에 1683년 오스만 제국의 15만 군대는 빈을 포위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구원군에 빈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을 때 폴란드 출신의 게오르그 콜시츠키라는 사람이 용감한 선택을 합니다. 터키인으로 변장한 뒤 몰래 빈을 빠져나가 구원군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고 오기로 한 것이죠. 그의 활약 덕분에 빈 사람들은 구원군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구원군이 올 때까지 좀 더 힘을 내어 오스만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콜시츠키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당한 액수의 돈과 함께 오스만군이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커피를 포상으로 받았다고 전합니다. 터키어 통역사로 활동하며 이슬람의 커피 문화를 잘 알고 있었던 콜시츠키는 포상으로 받은 원두를 밑천 삼아 빈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빈에는 커피 맛을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콜시츠키는 커피에 대한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춰야 했습니다. 그 결과 꿀과 우유처럼 빈 사람들에게 익숙한 재료를 섞은 커피가 등장했죠. 이 커피를 '멜랑지(Melange)'라고 합니다.

쓴 커피에 우유와 꿀같은 재료를 넣어 커피에 대한 수요층이 확대되었습니다. (출처: 유튜브 채널 '아이오IO')

우유를 섞은 커피가 빈의 대표적인 커피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즈음의 일입니다. 이로써 19세기가 되었을 때 유럽의 양 끝단에서는 커피를 만드는 두 가지 룰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한쪽에서는 커피를 걸러내면서 새로운 추출법을 실험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우유를 넣으면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었죠. 그리고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바리스타들은 양쪽의 실험과 개발을 결합했습니다. 고온과 고압으로 빠르게 내린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은 이 음료를 '카푸치노'라고 했죠. 그리고 이 음료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우유를 좋아하는 미국인의 취향에 맞춰 우유의 비중이 확 늘었습니다. 이 미국식 카푸치노를 '라떼'라고 구별짓기도 합니다. 첫 번째 룰과 두 번째 룰이 커피에 섬세한 맛의 차이를 주었다면 세 번째 룰은 커피와 대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다양한 재료와 결합함으로써 커피를 새로운 음료로까지 발전시켰습니다. 우유와 바닐라빈을 넣어 부드럽고 향긋하게 만들 뿐 아니라 초콜릿이나 카라멜을 넣어 달달하게 만들기도 하고 애플민트와 라임을 섞어 상큼함을 더하기도 합니다. 조합에 따라 커피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무궁무진하죠.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세 번째 룰 커피를 어떤 재료들과 조합할 것인지 선택할 것 이 세 번째 룰은 17세기 말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던 폴란드인 바리스타, 콜시츠키의 제안 하나에서 출발했습니다. 커피의 룰을 개척했던 선구적 바리스타들과 그들이 확립한 세 가지 룰의 최적 조합을 지켜나가며 한 잔 한 잔의 좋은 커피를 만들어냈던 수많은 바리스타들 이 바리스타들과 바리스타들이 지켜온 룰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다채로운 커피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리스타의 룰들이 만든 최고의 커피들 여러분은 어떤 커피를 가장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