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 띠를 본 적 있나요? 지구에서 바라본 우리 은하의 모습입니다.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약 200억 개의 다른 별들과 함께 우리 은하의 중심부를 둘죠. 이 별들 중 약 50억 개에는 우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행성이 딸려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이중 0.1퍼센트에서만 생명이 태어났다고 해도 우리 은하에는 수백만 종류의 생명체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걸까요? 생명체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아무도 인사하러 오지 않을까요?
이것은 미국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위)가 고민하던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페르미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이 역설에는 몇 가지 대답이 나와있는데요. 가장 흥미로운 대답 중 하나는 '동물원 가설'입니다. 우리의 사촌인 침팬지도 언어를 사용하는 지적 생명체입니다. 가령 침팬지가 팔을 드는 것은 '내게 그것을 줘'라는 의미죠. 하지만 우리가 저들과 대화를 나누기보다 동물원에 가둬놓고 구경하는 편을 택한 건 저들의 언어가 그다지 정교하진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외계인이 보기엔 우리가 그런 게 아닐까요? 그들에 비하면 인류 문명은 너무나 하등해서 굳이 대화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요. 또 다른 대답도 있습니다. '그레이트 필터 가설'입니다. 그레이트 필터란 대부분의 생명체가 극복하지 못하는 장애물을 말합니다. 생명의 탄생, 다세포의 출현, 육지로의 진출 등 오늘날의 생명체들은 그동안 수많은 필터들을 통과해왔습니다. 그리고 필터를 넘지 못하고 멸종했던 수많은 생명체들이 있었죠. 우리의 관심은 '그레이트 필터'를 우리가 통과했는가입니다. 그레이트 필터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외계 문명들은 모두 이 그레이트 필터를 넘지 못하고 멸종해버렸던 건 아닐까요? 이는 외계인이 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지를 설명해줄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대한 그다지 좋지 않은 전망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저들에게 벌어졌던 일은 미래의 우리에게 벌어질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가 그레이트 필터를 막 넘고 있는 중이라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필터가 '다행성 종족화'라면요? 이제 우리는 로봇을 보내 화성을 탐사하는 걸 넘어 인류를 화성에 정착시키려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정말 다른 행성을 식민화하고 다행성 종족으로 거듭난다면 지구의 위기가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지진 않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린 그레이트 필터를 넘게 되는 것일지 모르죠. 우리 전에도 이 단계에 도달한 외계인들이 있을 수 있다는 말도 되고요. 하지만 이러면 왜 외계인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남는데요. 어쩌면 우리가 몰랐을 뿐 우리 주변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큰 얼굴에 큰 눈, 작은 콧구멍과 뾰족한 턱 이런 외계인들, 많이 봐왔잖아요. 외계인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일 겁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형태를 좀 특이하게 변형시킨 것 같죠. 우주의 저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진화한 생명체가 우리와 비슷한 형태일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건 인간이기에 갖는 필연적 한계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아무도 본 적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나요? 우리는 경험한 것을 넘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가 이전에 경험했던 것을 변형하는 것까지죠. 때문에 외계인을 상상할 때에도 우리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생명체를 상상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외계인들은 단순히 외모만 비슷한 게 아니라 뇌가 척추를 통해 명령을 전달함으로써 몸 전체를 통제하는 척추동물 특유의 작동체계까지 비슷해 보이곤 합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지적 생명체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나요?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피터 고드프리스미스는 사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도 그런 지적 생명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문어'입니다. 연체동물인 문어는 약 5억 년 전 진화 계통에서 척추동물 계열과 갈라져 독자적으로 진화했는데요. 그래서 우리와 무척 다릅니다. 가령 인간의 몸이 머리, 배, 다리 순으로 되어 있다면 문어는 배, 머리, 다리 순으로 되어 있죠. 머리에 다리가 달려 있는 겁니다. 문어도 뇌가 있지만, 우리와 좀 다릅니다. 인간의 뇌에 90퍼센트 이상의 신경세포가 집중되어 있는 것과 달리 문어의 신경세포는 다리 하나하나에도 고루 분배되어 있어서요. 각각의 다리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뇌가 중앙통제형이라면 문어의 뇌는 연방제인 셈입니다. 이렇게 다른데도 문어는 적어도 척추동물인 개만큼이나 영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타마르 구트닉입니다." 2011년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한 연구팀은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여기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어는 바로 이곳으로 다리를 집어넣어야 음식을 얻을 수 있죠. 그런데 그러면 다리가 물 밖으로 빠져나와 피부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요. 문어는 눈을 이용해 목표물까지 다리를 뻗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대부분의 문어가 학습에 성공했습니다. 때문에 2012년 전 세계의 유명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조류 등 척추동물뿐 아니라 연체동물인 문어까지 포함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라고 선언했죠. 우리와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쳐 진화해왔던 문어가 척추동물들과 유사한 수준의 지능과 의식을 발전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지능과 의식이 지구에서만 최소 두 번 독자적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각자의 지능과 의식을 발생시킨 생명체가 이 우주엔 얼마나 많을까요? 페르미 역설에 대한 세 번째 대답, 외계인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류와 너무 달라서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설명을 가장 좋아합니다. 영화 컨텍트(Arrival)가 잘 보여주었던 것처럼 외계인과 우리의 의사소통 방법이 생각보다 많이 다를 수 있죠. 따라서 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고 해도 아직 우리의 기술력이 부족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따뜻한 마음이 듭니다. 그저 무심히 빛나기만 했던 밤하늘의 별빛이 좀 특별해지는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