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두 개의 빵 조각 사이에 고기나 치즈, 채소 등의 속재료를 끼운 음식을 말합니다. 휴대가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데다 저렴하고 만족스럽기까지 한 이 음식. 우리는 언제부터 샌드위치를 먹었을까요?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1762년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연극을 보고 코코아트리 클럽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에 있던 상류층 남자들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로써 샌드위치가 사용된 가장 오랜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최초의 샌드위치는 아니었을 겁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를 묘사한 이 그림을 보면 나이프와 스푼은 있지만 포크는 보이지 않습니다. 포크가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빵과 고기와 치즈를 슬라이스 해서 샌드위치 형태로 조립하는 게 가장 깔끔한 방법 중 하나였죠. 빵을 먹는 문화권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인 식사법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별도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오랫동안 이름 없이 존재해 왔던 식사법은 어쩌다 샌드위치라는 구체적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푸드 히스토리 시리즈 푸디. 오늘의 음식은 샌드위치입니다.
1. 지역과 음식 사이
5세기 무렵 오늘날 덴마크, 네덜란드, 북독일 지역에는 앵글인과 색슨인, 유트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이 오늘날 영국 지역인 브리튼 섬에서의 지배력을 잃기 시작하자 브리튼 섬으로 이주해 정착했는데요.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동화되어 구별 없이 앵글로색슨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앵글인들이 사는 지역은 앵글인의 땅(Angles Land)이라는 뜻에서 잉글랜드(England)라는 이름을 얻죠. 영국(英國)이라는 명칭 또한 이 잉글랜드를 한자로 영길리국(英吉利國)이라고 음차 한 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9세기 무렵 앵글로색슨인들은 바이킹이라는 새로운 적과 조우합니다. 오늘날 덴마크와 노르웨이, 스웨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바이킹의 여러 부족들이 브리튼 섬으로 쳐들어와 약탈과 점령을 일삼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기록한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우리는 뜻밖에도 샌드위치라는 단어를 발견합니다. 올라프는 93척의 배를 이끌고 스테인스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약탈을 한 다음 샌드위치로 갔다.
샌드위치는 원래 지역 이름이었습니다. 모래를 의미하는 샌드(sand)와 시장이 설치되어 무역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의미하는 위치(wich)가 합쳐진 말이고요. 영국 동남부에 있던 작은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리고 1660년 영국의 귀족이었던 에드워드 몬태규는 샌드위치를 영지로 받아 제1대 샌드위치 백작이 됩니다. 이후로 몬태규 가문은 대대로 샌드위치 백작의 지위를 계승해 4대째인 존 몬태규에 이르렀죠. 그는 지역 이름이었던 샌드위치를 음식 이름으로 만든 주인공입니다. 이와 관련해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제4대 샌드위치 백작이자 영국 내각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도박에 푹 빠졌던 나머지 잠시라도 도박을 중단하는 걸 참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박을 하면서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구운 빵 두 조각 사이에 약간의 소고기를 끼워서 가져다 달라고 요리사에게 부탁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한 손으로는 음식을 먹고 다른 손으로는 음식을 먹고 있지 않은 것처럼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샌드위치 백작이 주문한 음식에 대한 소문이 런던의 클럽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샌드위치와 같은 것을 달라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이 말이 샌드위치를 달라로 축약되었다는 겁니다. 샌드위치가 어떻게 음식 이름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입니다.
2. 근면 혁명
이 이야기를 맨 처음 전한 사람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장 그로슬리였습니다. 그가 런던에 체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765년에 펴낸 책에 나와 있죠. 하지만 그도 보고 들은 것을 전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샌드위치 백작이 샌드위치라는 이름을 제공한 사람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가 도박 중독이었다는 사실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그는 도박에 빠질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매우 바쁘게 일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도박이 아니라 일을 중단할 필요가 없도록 빵과 고기를 미리 조립해 달라고 요청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좀 더 지지를 얻고 있죠. 하지만 샌드위치 백작 이야기는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왜 그때였냐는 겁니다. 빵에 음식을 끼우는 게 그토록 흔한 일이었다면 샌드위치는 다른 시간대에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름으로도 얼마든지 불릴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다른 후보들은 왜 기각되고 샌드위치라는 단어가 유독 보편성을 획득했던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라는 시간 그리고 영국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18세기에 영국은 아메리카와 인도 등을 식민화하며 제국주의 국가로 막 발돋움하고 있었습니다. 이 뜻밖의 성공 앞에서 영국인들은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어떤 특성이 이러한 성공을 가능하게 만들었냐고요.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제시되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근면이었죠. 동시대 다른 나라의 귀족들이 사치와 향락에 젖어 자멸의 길을 걸었다면 영국의 귀족들은 17세기부터 눈에 띄게 수수한 옷을 입으며 실용성을 중시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 근면하게 일하는 문화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18세기에 영국을 제국주의적 성공의 길로 이끈 요인으로 제시되었던 겁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시 영국 귀족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근면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가치관은 노동자 계층에게로 확산되었죠. 이와 같은 근면의 시대에 샌드위치 백작이 시의적절하게 제시한 아이디어는 영국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샌드위치가 보편성을 획득했던 이유입니다.
3. 수직 지향
샌드위치를 쥔 영국인들은 19세기 내내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해나갔습니다.그리고 제국에 포함된 곳이면 어디든 자신들의 샌드위치를 소개했죠. 그런데 19세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이것은 영국의 1인당 GDP를 100으로 놓을 때 미국의 1인당 GDP 변화를 나타낸 겁니다. 미국의 1인당 GDP는 줄곧 영국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1900년을 전후해서는 영국을 앞지르기 시작합니다. 세계 경제의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었죠. 그리고 이과 같은 패권의 이동은 샌드위치를 좀 다른 음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미국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마천루였죠. 1885년 시카고에 건설된 10층짜리 건물부터 1931년 뉴욕에 건설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이르기까지 이 무렵 미국 사회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건물을 무너뜨리지 않고 높이 쌓아 올릴 수 있을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어떻게 하면 샌드위치를 무너뜨리지 않고 높이 쌓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으로 손쉽게 옮겨갑니다.
그 시작점이 되었던 음식이 1890년대 뉴욕에서 등장한 클럽 샌드위치입니다. 클럽 샌드위치는 이전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던 샌드위치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음식이었습니다. 두 개가 아니라 세 개 또는 그 이상의 빵 조각을 사용해 건물처럼 층을 구분했고요. 속재료에서 나오는 물기로 인해 빵이 젖으면 기반이 부실해질 수 있으니 빵을 토스팅하고 마요네즈를 발라 방수막을 쳤죠. 그리고는 꼬챙이를 끼워서 빵과 속재료들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습니다. 건축으로 말하자면 기반을 다지고 토대를 세운 겁니다. 미국인들의 수직 지향은 샌드위치까지도 공학적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샌드위치는 더 이상 샌드위치 백작이 기대했던 음식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미국식 샌드위치는 너무 두꺼워서 한 손으로 쥐고 먹을 수 없고요. 먹다 보면 속재료들이 삐져나오기 쉽습니다. 간편성과 휴대성을 생각한다면 절대 이렇게 만들 수 없죠. 영국식 샌드위치와 미국식 샌드위치는 우리가 샌드위치라는 음식을 먹을 때 기대하는 두 갈래의 길을 제시합니다. 샌드위치는 우리가 격식을 갖춘 식사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속재료들의 단면은 우리의 미감을 자극하죠. 근면의 시대와 함께 탄생한 음식이자 엔지니어링의 일부가 된 샌드위치. 이와 같은 다채로움 덕분에 샌드위치는 전 세계의 눈과 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샌드위치를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