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이름은 빌헬름 뢴트겐. 독일 물리학자입니다. 1895년 음극선이 유리를 통과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던 그는 우연히 새로운 형태의 빛을 발견했습니다. 이 빛은 가속된 전자의 속도가 금속 원자의 영향으로 급속하게 줄 때, 전자가 가지고 있던 운동 에너지가 변하면서 생긴 것입니다.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방사선'이라고 부르죠. 이 방사선을 연구하던 뢴트겐은 감응필름을 밑에 깔고 자신의 손을 갖다 대었더니 뼈만 하얗게 새겨진 해골 사진이 필름에 나타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미스테리한 방사선, '엑스레이'가 발견된 순간이었습니다. 엑스레이가 만들어내는 해골 사진들은 이전에 없던 시각적 자극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직접 엑스레이 촬영을 해볼 수 있도록 파티를 여는 사교클럽들도 있었고요. 돈냄새를 맡은 신발가게들은 아예 엑스레이 촬영 장비를 매장에 비치해서 고객으로 하여금 신발을 신은 상태로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게 하기도 했죠. 20세기 초 엑스레이는 최첨단 과학이자 참신한 놀잇감이었고 마케팅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엑스레이가 등장했을 때 가장 열광했던 이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본 영상은 대한민국의 의료기기 제조업체, '바텍'과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 수술의 최소화
여러분은 병원 잘 다니시나요? 종종 병원 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사가 아무리 친절하다고 해도 병원은 본질적으로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공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병원을 어느 정도 두려워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어쩌면 과거에는 더욱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마취제'가 없던 시절에도 수술은 필요했기에, 그때 환자들은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1811년 파리에서 유방절제술을 받았던 프랜시스 버니라는 사람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절개하는 내내 나는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렀다. 가슴뼈에 칼이 부딪혀 긁히는 것이 느껴졌다.' 19세기 중반이 되면 마취제가 보급되었지만 마취제가 없앤 건 단지 수술실에서의 비명소리 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의사들은 눈이나 귀, 손끝의 감각에 의지해 환자를 진단하는 게 전부여서요. 치료가 아니라 진단을 위해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았죠. 역설적이게도 마취제의 보급은 수술에 대한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곤 했습니다. 그러니 병원에 간다는 것은 여전히 큰 두려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킨 게 바로 엑스레이였습니다. 19세기 말 엑스레이를 처음 접했던 의사들은 곧 깨달았습니다. 장기의 밀도에 따라 엑스레이의 통과량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응용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요. 가령 버튼 배터리를 삼킨 아이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배터리가 있는 부분만 하얗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터리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죠. 폐렴을 앓고 있는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폐에 물이 차서 원래 까맣게 보여야 할 폐가 하얗게 보이고,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가서 뼈가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어둡게 보입니다. 엑스레이 덕분에 의사들은 비로소 몸에 칼을 대지 않고도 몸속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극적인 변화였습니다. 수술의 최소화는 마취의 발견에 버금가는 중요한 진보였죠. 그렇기 때문에 엑스레이의 활용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졌습니다. 1970년대 초에는 사람이 원통 안으로 들어가면 엑스레이 발생 장치가 원통을 따라 돌면서 여러 장의 단면사진을 찍는 기술이 등장합니다. 이걸 컴퓨터 단층촬영, 즉 CT라고 합니다. 이렇게 엑스레이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장 찍으면 한 각도에서 한 장만 찍을 때보다 사람의 몸속을 훨씬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죠. 그래서 어느 부위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엑스레이 기술의 발전은 정확한 진단이 바탕이 된 정확한 치료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2. 과연 안전할까?
엑스레이가 의료현장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확보해나가던 바로 그때, 한편으로는 엑스레이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엑스레이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기 시작한 건 1945년 미군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부터였습니다. 도시 전체를 날려버린 폭발의 규모도 규모였지만 폭발로 인해 발생한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이 이후 수십 년간 여러 질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방사선 피폭의 위험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겁니다. 아무리 의료용이라도 방사선인 엑스레이에 노출되는 것이 과연 안전한지에 대한 의문 또한 자연스럽게 제기되었죠. 물론 의료용으로 이용되는 엑스레이의 방사선량은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진 조건보다는 현저히 낮습니다. 전신 CT부터 치과 CT에 이르기까지의 방사선량은 30밀리시버트에서 0.05밀리시버트 사이이고 이 정도의 피폭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증명된 것이 없죠. 하지만 CT 등 엑스레이를 진료에 활용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에 소량의 방사선 피폭이라도 누적되면 안심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방사선 노출이 가장 적다고 할 수 있는 치과조차 그렇습니다. 치과는 아무래도 아동들이 많이 찾을 수밖에 없는데요. 방사선은 성인보다는 아동에게 더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77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의료용으로 꼭 필요한 방사선이라도 가능한 수준까지는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정, 국제적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을 '알라라(ALARA)'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엑스레이의 역사는 새로운 장에 접어들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의 엑스레이 기술의 발전 방향은 좀 더 정확한 영상을 얻는 데 집중되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여기에 더해 엑스레이 장비의 방사선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되고 있죠. 이에 대한 해법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가령 치과용 장비를 주로 생산하는 한국 기업 바텍의 경우, CT 촬영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 24초에서 3초 내외까지 줄였습니다. 촬영을 할 때 기계에 결함이 생기거나 환자가 몸을 움직이면 노이즈가 발생하곤 합니다. 이걸 '아티팩트'라고 하는데요. 아티펙트가 발생하면 영상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재촬영을 하게 되고 그러면 환자는 불필요한 방사선을 한 번 더 맞아야 합니다. 그러니 촬영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면 환자가 몸을 움직여 아티펙트가 발생할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죠. 또 다른 해법은 방사선량 자체를 줄이는 겁니다. 이건 방사선량을 기존 대비 4분의 1 이하로 줄여서 찍은 영상인데요. 이러면 원래대로 찍었을 때에 비해 노이즈가 많이 끼어 화질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텍은 최근 발달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노이즈만 골라 제거함으로써 촬영할 때 발생하는 방사선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일반 방사선량으로 찍은 것과 비슷한 결과물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련의 기술혁신들이 종합된 결과 최근 바텍에서 생산되는 CT의 방사선량은 기존 대비 52.6%나 줄어들었죠. 방사선량을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병원을 보다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건 우리의 오랜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엑스레이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듦으로써 불필요한 수술로 인해 고통받던 환자들을 구원했습니다. 그 편익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우리는 엑스레이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이 양날의 검이 발생시킬지 모르는 새로운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점차 터득해가고 있죠. 늘 그래왔듯,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바른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