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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를 먹다

by 팔딴 2023. 6. 21.

오록스

프랑스 서남부에 위치한 라스코 동굴에는 약 1만 7천 년 전에 살았던 동물들을 기록한 벽화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람한 체격 때문에 유독 눈에 띄는 동물이 있는데요. 기원진 1세기 전 집필된 '갈리아전기'에 따르면 이 동물의 이름은 '오록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록스는 "대단히 놀라운 힘과 속도를 지녔기 때문에 인간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도 당해낼 수 없다'라고 묘사했습니다. 코끼리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체구인데도 매우 빨라서 종종 우리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죠. 때문에 고대의 사냥꾼들에겐 '힘의 상징'이었고 또 그런 만큼 잡고 싶은 사냥감이기도 했는데요. 1만 7천 년이 지난 오늘날 사냥꾼의 후손인 우리들은 여전히 오록스의 후손들을 욕망합니다. 한 덩어리의 큼직한 소고기를 불에 구워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썰어먹습니다. 그건 마치 작게 재현된 사냥 같죠 "내가 이걸 입 안에 넣으면 육즙이 터지고 엄청 맛있을 거야" 우리는 왜 스테이크에 탐닉할까요?

 

1. 힘의 상징하다

아피스

인류가 동물을 사냥하며 살아갈 때 초원에서 만난 오록스는 무시무시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힘을 지닌 동물을 사냥한다는 건 사냥꾼들에겐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할 기회였죠. 오록스를 잡아서 돌아가는 날이면 무리 내에서의 위신도 올라갔습니다. 약 8천년 전 이곳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살던 인류는 오록스를 길들이면 필요할 때 잡아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인간에게 길들여지며 오록스의 체구는 점점 작아져 오늘날의 '소'가 되었죠 욕망은 곧잘 숭배로 전이되기 마련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소는 대지를 보살피는 어머니이자 남성적인 힘을 상징하는 리더였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을 파라오를 신성한 수소라고 생각했고 또 아피스(Apis)라 불린 황소 신을 섬기기도 했죠. 알파벳 A 또한 욕망과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소를 잘 보여주는 단어인데요 A를 거꾸로 뒤집으면 '뿔이 달린 소'의 모양이 됩니다. 이 글자는 고대 페니키아의 글자 알레프에서 유래했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소'를 의미하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 가닿죠 페니키아인들이 이집트의 수많은 상형문자들 중 소의 형상을 첫 글자로 삼았다는 건 고대 사회에서 소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보다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소에게서는 신성한 가치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대신 실용적 가치가 우세해졌죠. 고대 로마인들이 소를 대했던 자세는 이 가치의 역전을 잘 보여주는 옌데요 기원전 1세기 무렵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는 새로운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들은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짓고 고대 사냥꾼들의 오록스 사냥을 재현했죠 검투사의 칼이나 창이 마침내 황소의 심장을 찌르면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신성한 의미도 없었고 자연에 대한 자신의 힘을 확인하려는 인간의 욕망만이 있었습니다.

 

2. 소고기의 실용적 가치

신의 자리에서 쫓겨난 뒤 소의 실용적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농사일을 돕는 가축 또는 고기 이곳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초원에서 소나 양을 기르며 살던 노르드인이 있었습니다.

Steik

이들은 큼직하게 썬 고깃덩어리를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굽는 요리를 즐겼는데요. 이 요리를 '스테이크'(steik)라고 했습니다. 8세기부터 노르드인은 바다로 나아가 서유럽과 지중해 등지에서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9세기말 센강 하류에 정착해 노르망디 공국을 세웠고 1066년에는 잉글랜드까지 정복했죠. 노르망디 출신의 왕과 귀족들이 잉글랜드의 상류층을 구성한 겁니다. 그들은 고향에서 그랬듯 소고기나 양고기를 이용해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스테이크란 단어가 영어의 일부로 정착한 것으로 여겨지죠. 스테이크가 전해졌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그걸 먹을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스테이크는 대개 소고기로 만들어졌는데요. 대다수 농민들에게 소는 농사일을 돕는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금기와도 같았죠. 때문에 17세기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스테이크는 '선망의 음식'으로 존재했는데요. 18세기 초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병합해 영국을 형성했을 때 새 나라에 새롭게 등장한 풍경 중 하나는 상류층의 특권이었던 스테이크가 중산층에게로 확산된 것이었습니다. 많은 영국인들이 집이나 사교모임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즐겼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 대신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개발되면서 영국은 값싼 면직물을 생산할 수 있었고 영국산 면직물이 전 세계에서 불티나게 팔리면서 엄청난 부가 영국으로 흘러들었죠. 때문에 먹고살만해진 사람들은 '선망의 음식' 스테이크를 찾았습니다. 정체성은 포함에 관한 것인 만큼이나 배제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소고기가 아직 사치품이었을 때 영국인들은 가장 먼저 소고기를 '모두의 음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겐 없는 자신들에게만 있는 이 특징에 주목했죠. 스테이크를 먹는다는 것이 영국을 영국인의 힘을 영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던 겁니다. 19세기에 영국은 스테이크를 먹으며 소처럼 돌진해 나갔습니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이로써 영국은 새로운 '힘의 상징', '새로운 로마'가 되었죠.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이 칼과 창을 들었듯 근대 영국인들도 자신들만의 작고 귀여운 칼과 창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테이크를 찌르고 썰었죠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그릇 안에는 피처럼 보이는 육즙이 낭자했습니다. 스테이크를 먹는다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작게 재현된 사냥이라는 걸 의미했죠. '피를 좋아하면 천성이 호전적인 거지!'

 

3. 선망

19세기에 영국의 번영이 지속될수록 스테이크에 대한 수요도 계속 늘었습니다. 그동안 영국에 소고기를 공급했던 지역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였는데요. 이제 이곳만으로는 소고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고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영국인들은 대서양 건너편을 바라봤습니다. 그곳에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있었죠.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미국은 서쪽으로 나아가는 걸 '명백한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1803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한 데 이어 1846년에는 멕시코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텍사스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방대한 땅을 손에 넣었죠. 영국이 미국 중서부의 대평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 때 미국 또한 서부를 한창 개척해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소고기를 확보하려는 영국 자본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이으려는 철도부설사업은 한층 탄력을 받았습니다. 1869년 철도가 마침내 동서를 연결했을 때 통신사 웨스턴유니온은 이렇게 타전했습니다. '끝났다.' 이 말은 철도가 완성되었다는 뜻이지만 오늘날의 시선에서 보면 '영국의 시대는 끝났다'는 도발적인 선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가 완공된 이후 모든 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일단 영국인들은 바라던 걸 얻었습니다. 중서부에서 자란 소는 철도를 타고 시카고로 운반되었고 이곳에서 도축되고 포장되어 증기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죠. 덕분에 영국인들은 소고기 부족을 걱정하지 않고 스테이크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에 영국으로 보낼 소고기가 집결했던 뉴욕에도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미국인들도 영국인들처럼 '번영의 음식', 스테이크를 먹으며 '다음 시대의 영국'이 될 준비를 했습니다. 19세기 말 시카고의 도축공장들은 점점 증가하는 소고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작업 공정을 효율화할 필요를 느꼈는데요. 그 결과 개발된 것이 바로 '컨베이어 시스템'입니다. 소 한 마리에 여러 명의 노동자가 달려드는 대신 컨베이어에 소를 매달아 이동하도록 했고 노동자들은 각각의 자리에 서서 정해진 업무만을 반복했습니다. 누군가는 소를 죽이기만 했고 누군가는 배를 가르기만 했고 누군가는 물로 씻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이전에는 하루 80여 마리에 불과했던 처리량이 새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1,000여 마리까지 뛴 겁니다. 한편 이 놀라운 혁신을 유심히 지켜본 이가 있었는데요. '자동차 왕' 헨리 포드였습니다. 그는 소를 해체하는 공정을 거꾸로 뒤집으면 자동차를 조립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1913년 포드는 자신만의 컨베이어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그 결과 1910년 2만 대 가량에 불과했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1914년 27만 대까지 폭발적으로 뛰었죠. 소고기와 자동차가 마치 한 세트처럼 결속하며 '미국식 자본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대량생산시대를 열어젖힌 겁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생산량을 바탕으로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힘의 상징'이 되었죠. 국가와 기업의 성장이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던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희귀했던 그 시대 그때 노동자들은 급여로 집과 차를 살 수 있었고 주말이면 자기 집 뒷마당에서 스테이크를 구웠습니다. 아니면 차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스테이크를 주문했죠 19세기에 영국인들이 그랬듯 20세기에 미국인들도 자신들의 스테이크를 썰었고 그건 누가 뭐래도 '미국의 풍요'를 상징하는 이미지였습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전 세계가 미국을 선망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것을 선망했죠 미국인들처럼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싶었던 이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흘러나온 미국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라이프 스타일도 기저에 흐르는 가치관도 성공의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우리는 우리만의 칼과 창을 손에 쥐고 오래전 '힘의 상징'이었던 동물을 베고 찌릅니다. 그건 자연과 이 세상에 대한 자신의 힘을 확인하는 의식이기도 하죠 스테이크에 대한 우리의 선망은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