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하면 우리가 기본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렇습니다. 식초로 간을 한 밥에 여러 가지 날생선을 올린 모양이죠. 그런데 최초의 스시는 이랬습니다. '스시'라는 말은 신맛을 의미하는 일본어 '스(酢, 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자로는 '생선젓갈'이라는 뜻의 '지(鮨)'를 쓰죠. 즉 '숙성된 신맛'과 관련이 있습니다. 2세기경 동남아시아에서는 밥을 숙성시켜 발생한 신맛 물질로 생선을 보존하는 기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생선을 소금에 절인 뒤 그 위에 밥을 올려 몇 달 동안 놓아두면 쿰쿰하고 시큼한 생선젓갈이 만들어집니다.
이 생선젓갈로 즙을 낸 게 베트남의 느억맘이고 태국의 남쁠라입니다. 푸젠성 방언으로는 '케첩'이라고 합니다. 이 케첩은 인도네시아(케찹; Kecap)로 전해졌다가 영국(케첩; Ketchup)으로 가서 오늘날에는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되었죠 토마토 케첩입니다. 원래의 생선소스에서 생선은 빠지고 토마토와 식초, 설탕이 추가돼 오늘날의 새콤달콤한 소스가 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생선젓갈은 8세기경에는 일본으로 전해져 스시가 됩니다. 당시 일본은 불교가 전파되면서 소나 닭, 돼지 같은 육식을 기피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대체품인 생선이 주목을 받았죠. 이게 바로 최초의 스시입니다. 붕어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석 달간 절인 뒤 다시 밥을 채워 밥통에 넣고 숙성시켰습니다. 숙성기간만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이렇게 오래 숙성시키고 나면 밥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의 신맛이 났기 때문에 버릴 수밖에 없었죠. 우리가 보통, 스시는 밥과 생선을 함께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는 것과 달리 최초의 스시는 생선만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푹 삭히기 때문에 '삭히다'라는 뜻의 '나레를 붙여 나레즈시라고 합니다. 오래 숙성할 때 나는 강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숙성기간은 점점 짧아졌습니다. 15세기에 이르면 그 기간은 한달 정도가 되죠. 17세기에 이르러 숙성기간은 2~3일 정도까지 짧아집니다. 대표적인 게 오사카의 하코즈시인데요.
나무로 만든 틀에 밥과 재료를 채운 뒤 뚜껑으로 눌러 만들기 때문에 납작하고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코'는 우리말로 '상자'라는 뜻입니다. 숙성 스시가 반숙성 스시로 진화하며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밥을 생선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한 달 정도만 숙성시킨 밥은 먹을 만한 정도의 신맛이 났고 이걸 숙성한 생선과 함께 먹는 건 또 다른 별미였죠. 오사카에서 하코즈시가 만들어지던 무렵은 일본 내 권력의 중심지가 급격히 이동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일본 정치의 중심지는 교토와 그 주변의 관서지방이었는데요. 17세기 들어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본거지였던 에도를 새로운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에도는 오늘날의 도쿄입니다 때문에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이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죠 전통적인 중심지와 새롭게 떠오른 중심지 갈등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관서지방과 관동지방 사이에는 일종의 라이벌 의식이 생깁니다. 이들은 서로의 문화를 차별화하고 더 우월하게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식초와 소금으로 밥과 생선을 간하고 하룻밤 숙성시켜 만든 하야즈시 도쿄 특색의 스시인데요. 하야즈시 역시 라이벌 의식의 산물이었습니다. '하야'는 우리말로 '빨리'라는 뜻입니다. 2~3일간 숙성시켜 먹는 관서의 하코즈시보다 더 빨리 먹는 스시라는 의미였죠. 하야즈시는 당시 식초의 발명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식초는 발효를 기다리지 않고도 신맛을 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죠. 식초의 사용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신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발효와 부패 사이에서 경계심을 갖고 먹어야 하는 맛이 아닌 신맛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만든 거죠. 밥의 신맛은 숙성된 생선의 감칠맛과 단맛을 더욱 증폭시켜주었습니다. 하야즈시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크게 세 종류로 분화됩니다. 뭉친 밥에 각종 생선을 얹은 니기리즈시, 밥을 김으로 감싼 노리마키, 두부조각을 기름에 튀겨 만든 유부로 밥을 감싼 이나리즈시, 특히 1820년경 발명된 니기리즈시는 오늘날 스시를 대표하는 얼굴이 됩니다. 하룻밤을 숙성시키는 하야즈시도 숙성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거였는데요. 니기리즈시는 한 술 더 떠 아예 즉석에서 밥을 꼭꼭 뭉친 뒤 재료를 얹어 내놨죠. 천 년 전만 해도 만드는 데 수년이 걸렸던 슬로우푸드가 즉석에서 바로바로 만들어지는 패스트푸드가 된 겁니다. 물론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날생선은 아직 힘들었고 며칠 숙성한 생선이나 찐 새우가 밥 위에 올라갔습니다. 혹시 몰라 살균 효과가 있는 와사비를 생선과 밥 사이에 넣었죠. 간장을 바르거나 찍어 먹기도 했습니다. 원래 와사비와 간장은 생선이 부패하는 걸 막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밥 위에 날생선이 올라가게 된 건 20세기 초 냉장고가 발명되면서부터입니다. 냉장고는 생선을 신선하게 만드는 걸 가능하게 해줬고 덕분에 날생선으로 만든 스시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식초로 간을 한 밥에 여러 가지 날생선을 올린 스시 스시는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