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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수리 '마라(麻辣)'수리

by 팔딴 2023. 7. 14.

마라탕

여러분은 마라탕을 아시나요? 엄청 매운데 먹다보면 혀까지 얼얼해지는 국물요리, 마라탕. 2019년 한국을 뒤흔든 음식이었는데요 [마: 감각이 없는 / 라: 매운] 마라라는 말 자체가 엄청 맵다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마'는 마비가 된 것처럼 얼얼한 매운맛을 의미하고 '라'는 불을 삼킨 것처럼 뜨거운 매운맛을 의미하죠. 그런 '마'와 '라'가 만났으니 극한의 매운맛을 내는 겁니다. 마라탕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을까요? 오늘은 마라탕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쓰촨

마라탕의 뿌리는 중국 쓰촨에 있습니다. 쓰촨은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고 *쓰촨(四川): 네 개의 강 이름처럼 네 개의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요. 때문에 여름은 특히 무덥고 습도가 높은 걸로 악명이 높죠. 악명 높은 더위와 습도는 악명 높은 매운맛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이유로 중국사람들은 "쓰촨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전통의학에서는 습기를 만병의 근원으로 여겨 경계하는데요. 몸 안에 습기가 차면 몸이 무거워지고 이게 계속되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킨다고 보죠. 그래서 쓰촨 사람들도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면서 몸 안에 들어찬 습기를 빼내려고 했습니다. 또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음식이 상하는 걸 막기 위해 소금에 절이거나 여러 가지 향신료를 뿌렸는데요. 쓰촨 사람들이 이용한 대표적인 향신료는 화자오와 건고추였습니다. 화자오는 레몬처럼 신맛을 내는 동시에 혀가 얼얼해지는 매운맛을 내는데요. 앞서 이야기했듯 이 맛은 '마'라고 불렸습니다. 또 건고추는 입 안에서 뜨거운 감각으로 느껴지는 바로 그 매운맛을 내죠 이 맛은 '라'라고 불렸습니다. 쓰촨 사람들은 화자오와 건고추를 기름과 함께 섞어 소스를 만들었고 이 소스의 이름이 바로 '마라'입니다 마라는 쓰촨의 여러 음식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소스이고 때문에 쓰촨의 맛이라고 할 수 있죠.

 

2. 뱃사공

1920년대 쓰촨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쓰촨의 자연환경은 험악해서 육로로 쓰촨에 들어가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대신 배를 타고 양쯔강을 거슬러올라 충칭이나 청두에 닿는 루트가 많이 이용되었죠. 근데 이것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순풍을 만나면 돛을 세워서 가볍게 노를 젓기만 해도 배가 쑥쑥 나아갔지만 바람이 약할 경우엔 뱃사공들이 배를 밧줄로 묶고 직접 끌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죠. 몸도 마음도 축 늘어질 때만 되면 뱃사공들은 강기슭에 배를 대고 모여 입 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매운 국물을 끓였습니다. 그들도 쓰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국물엔 마라소스가 들어갔죠. 그리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채소나 미리 챙겨온 천엽이나 내장 같은 부산물 고기들을 국물에 담갔습니다. 이 음식을 마라훠궈라고 합니다. 마라탕의 기원이 되는 음식이죠. 마라훠궈가 뱃사공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자 청두나 충칭의 부두에 있던 상인들도 이것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꼬치를 쭉 진열해놓았고 손님이 자기가 먹을 꼬치를 고르면 상인은 그 재료를 구멍이 송송 뚫린 작은 냄비에 담아 국물이 펄펄 끓고 있는 큰 솥에 담갔죠. 재료가 익으면 꺼내서 그릇에 담았고 그 위에 국물을 부어 일품요리 형태로 내놨습니다. 마라훠궈가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음식이었다면 그건 한 사람만을 위한 작은 훠궈 같았습니다. 쓰촨 사람들은 이 음식을 마오차이라고 불렀습니다. '채소를 데친 뒤 다시 꺼낸다'는 뜻입니다.

 

3. 둥베이

쓰촨의 마오차이가 쓰촨 밖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1990년대부터였죠. 마오차이가 이렇게 늦게 알려지게 된 건 중국의 호구제도 때문입니다. 1950년대 말 중국 정부는 호구제도를 만들어서 전국민을 농민과 시민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막았죠. 그래서 1970년대까지는 사실상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정부 정책도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죠. 중국 내 이동 인구가 늘면서 중국 각지의 음식들을 맛보는 사람들도 늘었습니다. 쓰촨의 마오차이도 간쑤의 우육면 신장의 양꼬치와 함께 본래 있던 지역을 벗어나 중국 전역에 소개되기 시작했죠. 베이징과 둥베이에서 마오차이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마오차이를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면 좀 더 직관적인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매운맛을 즐기지 않던 둥베이 사람들에겐 엄청나게 맵다는 게 마오차이만의 특징이었죠. 마오차이는 마라탕이 됩니다. 둥베이의 마라탕은 둥베이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했습니다. 마라소스가 덜 들어갔고 대신 땅콩소스가 첨가됐죠 때문에 마라맛은 줄고 고소한 맛이 늘었으며 국물은 땅콩소스 때문에 탁한 빛깔을 띠게 되었습니다. 마라탕은 마오차이와 좀 다른 음식이 되었죠. 2000년대에 둥베이의 마라탕은 둥베이를 넘어 중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0년대에는 대림동의 중국인 거리를 중심으로 한국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중국인이 늘고 반대로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한국인이 많아지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마라탕이 입소문이 나게 됩니다. 결국 2019년 대폭발! 마라탕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마라탕 가게가 생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죠.

 

5. 에필로그

마라탕을 무언가를 견뎠던 사람들의 음식입니다 쓰촨의 덥고 습한 기후를 견뎠던 사람들이 마라라는 독특한 매운맛을 탄생시켰고 힘든 육체노동을 견뎠던 뱃사공들이 마라탕을 만들어냈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것들을 다 쏟아낸 뒤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할 힘을 냈습니다. 매운맛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매운맛은 뇌에서 통증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뇌는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엔돌핀 같은 마약성 진통물질을 분비하죠. 그래서 매운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 느낌을 받습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100년 전 쓰촨의 뱃사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라탕을 먹어보는 건 어떠신가요? 마라탕은 뜻밖의 위로를 건네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