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은 매우 암담했습니다. 36년 간의 식민지배를 거치고 3년간 민족상잔의 극렬한 전쟁으로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제조/생산시설의 파괴는 물론 극심한 식량난이 전국을 덮쳤습니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에, 라면은 태어났습니다.
1. 제2의 쌀
대한민국 최초로 라면이라는 제품이 탄생한 것은 1963년에 삼양라면이 출시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삼양라면이 사람들에게 어필했던 키워드는 바로 '제 2의 쌀' 이었습니다. 당시 짜장면의 가격이 20원이었고, 커피 한 잔이 35원 하던 시절에 삼양라면은 단돈 10원으로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고, 그로 인해 밥 대신 든든하게 한 끼를 책임질 수 있는 음식으로 포지셔닝했죠. 하지만 삼양라면의 매출은 초기에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라면'이라는 제품이 무엇인가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한국인들은 '라면'이라는 개념 자체에 익숙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본 적도 없고 들어보지도 못한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라면이라는 것을 접했을때 라면의 꼬불꼬불한 면발을 실로 착각하거나, 튀겨서 딱딱해진 걸 플라스틱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죠. 이런 상황에서 초기 라면의 소비와 대중화에 기여한 것은 박정희 정부였습니다. 1963년, 삼양라면이 첫 출시된 바로 그 해에 정식 출범했던 박정희 정부. 박정희 정부는 전국의 시급했던 식량난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분식장려정책을 펼쳤습니다. 분식장려정책이란 한국인의 주식인 쌀의 생산이 사람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때문에 당시 미국의 주요 원조물자인 밀가루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도록 장려한 것인데요. 당시 미국은 자국에 차고 넘치는 밀가루를 주요 원조물자를 통해 처분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지원했습니다. 그 때 밀가루를 주원료로 하는 라면도 이 정책에 힘입어 서서히 인기를 얻게 됩니다. 박정희 정부의 밀가루 소비촉진 정책과 맞물려 삼양라면은 출시 6년 만에 매출액이 300배 이상 신장했고, 삼양라면이 어필했던대로 삼양의 '라면' 정말로 제2의 쌀이 되었습니다.
2. 속도전
1960년대부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던 한국 경제는 1970년대에 고공행진을 위해 이륙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구에서 수백 년 걸린 산업화를 한국이 불과 수십년 만에 따라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속도. 라면과 냄비, 물과 불만 있으면 어디서든 간단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라면의 최대 경쟁력 역시 속도. 라면은 그 신산했던 속도전의 동반자였습니다. 노동자는 밤낮없이 일했고,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도 늘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빨리빨리 민족'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빠르게 경제를 안정시켜갔습니다. 한국인이 배우는 첫 요리가 ‘라면’으로 굳어진 게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야근을 하는 노동자가, 꿈을 찾아 도시로 온 청년이, 맞벌이 가정의 청소년들이 라면으로 끼니를 떼웠죠. 라면은 정말로 온 국민의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식량이 되었습니다.
3. 소고기 국물
라면의 인기는 어쩔 수없이 라면 시장에 참여하는 경쟁자를 늘어나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삼양라면의 경쟁자가 1965년에 등장합니다. 롯데공업이었습니다. 삼양이 이미 라면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후발주자로서 롯데공업이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승부수가 필요했습니다. 롯데공업의 승부수는 소고기였습니다. 당시 삼양라면의 국물은 하얗고 담백한 닭고기 국물이었습니다. 라면제조 기술 자체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었던 만큼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롯데공업은 라면이 당연히 닭고기 국물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뜨리고 닭고기 대신 한국인이 가장 선망하는 고기 소고기로 시장에 어필합니다. 당시(1970년) 한국의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1.2kg. 2016년 11.6kg와 비교해 10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한 달에 5천원밖에 벌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했던 그때, 한 근에 500원 정도 했던 소고기 가격은 사먹기에 여간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었습니다. 소고기라면은 소고기를 사먹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었습니다. 라면 스프 한 봉지로 우려낸 소고기 국물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았고, 롯데공업은 한때 95%나 차지했던 삼양의 시장점유율을 25%나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소고기라면의 히트로 이때부터 대부분의 한국 라면 스프에는 소고기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닭고기를 많이 사용하는 일본, 돼지고기를 많이 사용하는 중국과 분명히 구별되는, 한국 라면만의 특징이 바로 소고기 국물입니다. 롯데공업은 소고기라면의 성공에 힘입어 1975년 후속작인 농심라면을 내놓았고 이것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아예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형님 먼저 드시오, 아우 먼저 드시오"하는 농심의 광고를 보면 그 시대상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예전이라면 나할 것 없이 먼저 먹으려고 했을 텐데, 서로의 것을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에서는 1970년대 경제성장으로 넉넉해진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4. 매운맛
삼양을 공략하던 농심의 다음 승부수는 매운맛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1986년에 출시된,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입니다. 포장 하단을 가로지르는 노란색 선. 맵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심장이 뛰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신라면의 매운맛은 드디어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1982년 안성탕면, 84년 짜파게티를 차례로 출시하며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넓혀가던 농심은 신라면 출시 직전 삼양을 앞질렀고, 신라면 출시 이후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1위를 구축하게 됩니다. 매운맛은 한국 라면의 또 다른 특징이 되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열 개의 라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중 소고기 국물을 사용한 라면은 신라면, 진라면, 안성탕면, 육개장 사발면, 삼양라면. 절반에 달합니다. 매운맛은 그보다 더해서, 짜파게티를 제외한 전부, 즉 90%입니다.
5. 에필로그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각별합니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3.7개로 전체 1위였습니다. 닷새에 한 번 꼴로 라면을 먹는 셈이죠. 한때는 제2의 쌀이었고 경제성장의 동반자였던, 소고기 국물과 매운맛으로 대표되는 한국 라면. 라면은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고, 한국인은 오늘도 라면을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