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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국질은 왜 하는가?

by 팔딴 2023. 6. 13.

딸꾹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짧고 날카롭고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호흡입니다. 말을 하다가 갑자기 딸꾹질이 나와 당황했던 경험, 많이들 있을 겁니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말합니다. 이 불편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우리가 물고기와 역사를 공유한다는 데에 있다고. 초콜릿처럼 달달한 책읽기, 채컬릿. 오늘의 주제는 '딸꾹질'입니다.

딸국질

지구상의 생명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은 여러 개가 있고 그중 어느 게 맞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게 '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고체 상태에서 분자들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쉽게 돌아다닐 수 없고 기체 상태에서는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분자들이 어떤 반응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모이려면 액체 상태여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약 40억 년 전에도 지구의 지각을 덮고 있던 액체는 물이었죠. 원시 지구의 바다속을 돌아다니던 분자들은 여러 조합으로 만나 유기물과 유전물질을 형성했고 이들이 다시 인지질처럼 친수성과 소수성을 모두 갖는 분자들이 형성한 막에 의해 둘러싸이며 최초의 생명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공통 조상이 되는 '루카'입니다. 루카는 스스로를 복제함으로써 번식했기 때문에 루카의 자식들은 루카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 자식들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다 가끔 복제가 잘못돼 조금 다르게 생긴 자식들이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이 돌연변이들 중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개체도 있었고 부모보다 훨씬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개체도 있었습니다. 전자나 전자의 후손들은 살아남기가 힘들었을 테지만 후자나 후자의 후손들은 훨씬 성공적으로 살아남아 큰 집단을 이룰 수 있었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차이들이 계속 누적되면서 결국 큰 차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루카의 후손들 사이에 종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억 5000만 년 전 루카의 먼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보다 훨씬 복잡하게 진화해 있었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여전히 단순한 편에 속했습니다. 그때 생명체들에게는 별다른 감각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운 좋게 먹이가 될 만한 생물을 맞닥뜨리면 잡아먹는 정도였죠. 그런데 약 5억 4000만 년 전부터 눈이 진화하면서 상황이 변합니다. 이제 생물들은 그저 먹이가 부딪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먹이가 있는 쪽으로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것은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꿔버린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한동안은 눈을 가진 포식자들이 승승장구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피식자들 중에 단단한 껍질을 가진 돌연변이가 등장하면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죠. 껍질을 뚫을 수 없었던 포식자들은 점점 도태되었고 껍질을 가진 피식자들은 살아남아 더 많은 후손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이번에는 포식자 쪽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돌연변이가 등장하면 판이 또 뒤집어집니다. 이처럼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의 군비경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생물들은 갑자기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죠. 이것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합니다. 이 캄브리아기의 바다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던 생물은 '아노말로카리스'였습니다. 아노말로카리스는 밝은 눈과 단단한 껍질, 집게발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지느러미를 이용해 물속을 능숙하게 헤엄칠 수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이 생물의 이름은 '피카이아'입니다. 피카이아에게는 밝은 눈도 단단한 껍질도 없었지만 스스로를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 하나 있었습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등줄기를 따라 길게 뻗어있던 '척삭'입니다. 척삭을 따라 근육들이 대칭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척삭을 중심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면 헤엄칠 때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카이아는 빠른 속도로 포식자를 피해 달아날 수 있었고 당대 최강자였던 아노말로카리스가 멸종한 이후로도 계속 살아남아 번성했죠. 피카이아의 후손들 중에는 척삭을 척추로 진화시킨 이들이 있었으니 이 최초의 척추동물은 우리가 흔히 '물고기'라고 부르는 '어류'입니다. 초창기의 어류는 턱이 없는 '무악어류'였습니다. 그러다가 약 4억 년 전 '판피어류'가 등장하면서 최초로 턱이 생겼고 이후 어류들 중에는 원래 살던 얕은 바다에서 벗어나 깊은 바다나 강 등으로 이동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다시 '연골어류', '극어류', '조기어류', '육기어류'등으로 분화됩니다. 이처럼 어류가 다양화되고 그 개체수가 크게 늘면서 생존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 중에는 물과 뭍의 경계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이들의 후예가 바로 '양서류'와 '파충류', '조류', 그리고 우리가 속한 '포유류'입니다. 이것은 약 3억 7000만 년 전에 살았던 육기어류, '틱타알릭'의 화석입니다. 화석을 바탕으로 재현한 틱타알릭은 이런 모습인데요. 틱타알릭은 몸이 비늘로 덮여 있어서 분명 어류의 특징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어류들에게는 없던 신체적 특징 또한 갖고 있었습니다. '폐'가 있어서 물밖에서도 숨을 쉴 수 있었고 머리와 몸통을 구분하는 '목'이 있어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필 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지느러미'입니다. 틱타알릭의 지느러미뼈는 원초적인 팔다리 골격구조를 하고 있었고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튼튼해서요. 오늘날 망둥어처럼 틱타알릭도 지느러미로 배치기를 하며 땅 위를 이동할 수 있었죠. 이후 수억 년의 세월 동안 틱타알릭의 후손들은 부모의 꿈을 조금씩 연장하고 확대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물밖 세상에 적응한 어류들은 물속에 남은 그들의 친척들과 많은 면에서 달라졌죠. 하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의 편견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여기, 이 녀석은 '폐어'인데요. 겉보기엔 우리보다 연어나 상어와 비슷해보이지만 사실은 진화적으로 우리와 더 가깝습니다. 틱타알릭처럼 육기어류에 속하는 폐어는 연골어류인 상어와 여기서 갈라졌고 조기어류인 연어와는 여기서 갈라졌습니다. 반면 우리와는 여기서 갈라졌죠. 우리가 분류할 때 육지에 적응한 어류들을 포유류나 조류, 파충류, 양서류 등 세밀하게 구별해서 부르는 반면 바다에 남은 어류들을 모두 '어류'로 통칭하다보니 잘못된 거리 감각이 만들어진 겁니다. 연어와 폐어를 모두 '어류'라고 부를 수 있다면 폐어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우리도 여전히 어류 가족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말이죠. 그리고 딸꾹질은 물속에서 살던 시절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징과 물밖으로 나와 살던 시절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징 사이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상어나 연어와 달리 아가미가 아닌 폐로 숨을 쉬고 저들에게는 없는 목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어나 연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여전히 뇌간에서 호흡을 통제하죠.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상어나 연어는 뇌간과 아가미 사이의 거리가 짧지만 우리는 뇌간에서 나온 신경이 목을 지나 폐에 이르기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요인에 의해서든 신경전달이 쉽게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신경전달이 방해를 받으면 폐 아래에 위치한 횡격막이 경련을 일으켜 폐가 갑작스럽게 팽창하면서 외부 공기가 유입되고 그러면 목구멍에서 공기의 드나듦을 조절하는 문이 갑작스러운 공기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급히 닫히면서 이런 소리가 납니다. - (딸꾹) - 딸꾹질 좀 그만해! 처음엔 좀 참아보다가 딸꾹질을 해! - 어쩔 수 없어요. 긴장하면 항상 딸꾹질이 나오는 걸요. (딸꾹) 즉 우리는 먼 조상과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지만 기본적인 설계도는 여전히 먼 조상의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딸꾹질을 합니다. 따라서 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개조된 물고기이다. 물고기의 체제를 가져다가 포유류의 옷을 입힌 뒤 미세한 조정을 가해 두 다리로 걷고 말하고 생각하고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만들면 갖가지 문제점들이 잠복한 조리법이 완성된다. 물고기를 포유류로 변장시키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딸꾹) 그리고 딸꾹질이, 바로 그 대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