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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의 기원

by 팔딴 2023. 6. 11.
병사들은 저마다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죽음에서 어떻게 하면 도망칠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황급히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죽음에 대한 예감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공포 중 하나였습니다. 그랬기에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바람은 수많은 사상과 종교를 낳았죠. 고대 중화세계의 신선 사상도 그랬습니다. 신선은 불사(不死)의 존재인데요. 처음에는 신적 존재로 여겨져 인간에게 불사의 영약인 단을 주는 존재로 알려졌지만, 나중에는 누구나 열심히 도를 닦으면 단약 만드는 비결을 깨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단약을 얻기 위해 신선이 산다고 알려진 명산들을 찾아다니거나 열심히 수련하며 단약 만드는 실험을 했죠. 그런데요. 어쩌면 우리가 먹는 이 두부가 단약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원전 2세기 말, 중화제국 한에는 화이난 지역을 다스리는 유안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유안은 아침 저녁으로 여덟 명의 신선에게 술과 고기를 올리며 극진히 대접했고, 그 결과 단약 만드는 법을 전수받아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유안이 만든 단약이 더우푸더우푸, 우리 말로 두부였다는 다른 전설도 함께 전해지고 있죠. 하지만 오늘날 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정작 유안은 두부에 대한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던 데다 동시대의 다른 문헌에서도 두부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부와 관련된 무덤 벽화
(출처: 유튜브채널 '아이오IO' 中)

두부의 기원에 대한 좀 더 믿을만한 증거는 허난성 정저우 시에서 발견된 1세기경의 무덤 벽화입니다. 맷돌로 콩을 갈아 두유를 만들고, 약한 불로 끓인 두유에 간수 같은 응고제를 넣어 단백질이 몽글몽글 덩이지게 하며, 이 단백질 덩어리들을 네모난 상자에 넣어 물을 빼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죠. 이 그림대로 한다면 결국 우리가 아는 모습의 두부가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최소 1세기 무렵에는 두부가 존재했을 겁니다. 문헌 기록 중 가장 오래된 사례는 그보다 훨씬 뒤인 10세기 중반, 송의 도곡이 쓴 《청이록》에 나오는데요. 도곡이 칭양의 관직을 잠시 그만두고 검소하게 살고 있는데, 고을 사람들이 도곡에게 고기를 주고 싶었지만 넉넉지 않자 매일 두부 몇 개를 내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 두부의 기원을 짐작할 만한 단어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두부를 소재양이라고 불렀다. '소재양'. 소는 작다는 뜻이고, 재양은 양고기를 가리킵니다. 즉 작은 양고기라는 뜻이죠. 왜 두부를 작은 양고기라고 불렀던 걸까요? 사실 칭양은 양고기를 먹을 만한 지역이 아닙니다. 칭양이 위치해 있는 양쯔강 유역은 따뜻한 기후에 비도 많이 내려서 쌀농사를 주 산업으로 삼은 농업사회였고요. 가축을 기른다면 고온다습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돼지가 있었으니까요. 농경민의 가축은 돼지였습니다. 반면 양은 춥고 건조한 환경에 잘 적응하기 때문에 유목민의 가축이 되었죠. 드넓은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던 중앙아시아 스텝의 사람들은 양떼를 풀어놔 양들이 마음대로 풀을 뜯게 하는 대신 양에게서 짠 젖과 이 젖을 가공해서 만든 치즈를 양식으로 삼아 살아갔습니다. 양이 싼 똥은 나무를 대신해 땔감이 되었고, 양을 잡아서 얻은 가죽은 카페트가 되었죠. 그리고 양고기, 특히 양고기를 꼬치에 꿰어 불에 굽는 것은 초원 생활에서 가장 간단하게 고기를 조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가장 애용되는 음식이었습니다. 오늘날 몽골과 위구르,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남부와 아제르바이잔, 터키 등 중앙아시아 스텝을 따라 셔를럭셔를럭, 양러촨, 샤슬릭, 시시 케밥으로 이어지는 양꼬치 벨트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기원전 11세기 중반, 웨이허 분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황허강 하류의 농경사회로 세력을 확대하며 장차 중화라는 이름으로 불릴 세계를 열었습니다. 중화의 시작을 알린 나라, 주(周)인데요. 주는 유목민이 농경민을 정복한 형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고기와 양젖은 황허강 하류에서도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이후 진과 한, 수, 당, 송으로 이어지면서 중화라는 세계는 양쯔강으로까지 확대되었죠. 양고기와 양젖에 대한 선망 역시 마찬가지 길을 걸었고요. 밥과 차 중심의 지루한 식사를 해오던 농경민에게는 가끔 먹는 유목민의 음식만큼 강렬한 유혹도 없었을 겁니다. 이러한 정황을 잘 나타내는 글자가 부러워할 선(羨) 자인데요. 양 양(羊) 자에 침 연(涎) 자가 합쳐져 양고기를 보면서 침을 흘리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양고기는 누구나 인정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기에, 이 글자는 부러워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차(茗)의 별명인 낙노(酪奴)는 젖 낙(酪) 자에 종 노(奴)자가 합쳐진 단어인데요. 직역하자면 젖의 시종이라는 뜻입니다. 유목민의 음료인 양젖에 비하면 농경민의 음료인 차는 시종조차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죠. 그만큼 양젖은 차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음료로 여겨졌습니다. 사실 농경민에게 있어 고기와 젖이 선망의 대상이 된 건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유목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고기와 젖을 언제나 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대체제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뤄지곤 했는데요. 실제로 유럽과 중동에서는 아몬드를 이용해서 가짜 젖인 아몬드 밀크를 만들었고,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코코넛을 이용해 가짜 젖인 코코넛 밀크를 만든 바 있습니다.

두부
(출처: 유튜브채널 '아이오IO' 中)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콩을 이용해 가짜 젖인 소이 밀크, 즉 두유를 먹었으리라 하고 상상해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유목민들이 가축의 젖에 응고제를 넣어 치즈를 만든 모습을 보고 두유에 응고제를 넣어 두부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있죠. 두부는 불사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양고기에 대한 선망을 동력 삼아 탄생한 음식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1세기경에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두부가 이후 별다른 기록이 발견되지 않다가 10세기 중반부터 관련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두부가 바로 이 무렵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왜 이 무렵이었을까요? 10세기 중반에 중화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제국은 송이었습니다. 송은 이전의 중화제국들과 비교했을 때 한 가지 면이 크게 달랐는데요. 이전의 중화제국들이 중앙아시아 스텝의 유목사회를 영역 안에 넣으면서 양고기를 수급했던 것과 달리, 송은 그러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양고기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양고기가 매우 비쌌고 이와 같은 정황은 양고기의 저렴한 대체재로서 작은 양고기인 두부의 보급이 촉진되는 계기가 되었죠. 기발하고 맛있는 건 결국 입소문이 나기 마련입니다. 머잖아 두부는 송과 활발하게 교류하던 고려와 일본, 그리고 베트남의 전신인 다이비엣으로 전해졌고, 이들 나라에서도 두부는 채소 위주의 지루한 식단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가짜 고기로서 크게 환영받았습니다. 이후 광둥과 푸젠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상인들이 남중국해와 인도양의 물류가 모이던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로 진출함에 따라 두부 또한 타이(따오후)와 말레이시아(타우후말레이시아(타우후), 인도네시아(타후) 방면으로 진출했죠. 17세기에는 광둥과 푸젠으로 내항한 유럽인들이 두부를 맛봤고 두부의 현지 방언인 테우푸라는 이름으로 고국에 소개했습니다. 여기서 두부를 가리키는 영어 토푸가 나왔죠. 두부는 각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환경적 맥락에 맞게 변주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북쪽에 위치한 동아시아에서는 두부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도록 해서 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흩어지는 질감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두부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가진 동남아시아에서는 원래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두부에 수분이 많으면 쉽게 상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들 나라에서는 두부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일단 두부를 기름에 튀겨놓는 경우가 많았죠. 환경적 차이가 두부의 다양성에 영향을 끼친 사례입니다. 이외에도 두부를 얇게 압착해 건조시킨 뒤 국수 모양으로 잘라서 먹기도 했고요. 처우더우푸처럼 일부러 발효시켜서 감칠맛이 폭발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식욕이 뚝 떨어지게 하는 고약한 냄새도 같이 생성되었지만요. 그런가 하면 두부를 얼렸다가 녹인 뒤 건조시킨 고야도후 같은 것도 있었는데요. 이 두부는 수분이 다 빠져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스펀지처럼 쫄깃쫄깃 질감을 가졌습니다. 두부는 스스로의 존재감보다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통해 빛을 내는 음식입니다. 순백의 두부가 양념을 흡수하듯, 다양한 문화권으로 퍼져나간 두부는 현지의 맥락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다양한 소스와 육수, 조리법과 만나며 만 가지의 요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범위를 확장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