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전 세계의 도시 인구는 10명 더 늘었습니다. 하루로 환산하면 매일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약 20만 명에 달하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한 결과 오늘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무려 42억 명에 달합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인데요. 이는 사실, 좀 기묘한 느낌을 줍니다. 인류 최초의 도시가 등장한 건 불과 6천여 년 전 하지만 현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건 무려 30만여 년 전이죠. 책 《메트로폴리스》는 말합니다. "도시의 발명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고", "우리가 도시를 체험하며 보낸 시간은", "인류가 지구에서 지낸 시간의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떻게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버리고", "비좁은 환경에서의 정체 상태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약 1만 2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막을 내리자 인류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기온이 점점 따뜻해져 초원지대가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인류가 주로 사냥했던 동물들도 먹을 것을 찾아 북쪽으로 올라가는 일이 잦아졌던 겁니다. 일부는 동물을 따라 올라갔지만 일부는 남아 조금 더 작은 동물들을 사냥했고 야생에서 자라던 동식물을 길들이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길들여진 식물을 작물이라 하고 길들여진 동물을 가축이라 합니다. 작물화와 가축화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지역은 바로 이곳, '비옥한 초승달 지대'였는데요. 나일 강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비옥한 땅이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이곳은 각양각색의 지형과 기후, 고도를 갖춰 길들일 만한 녀석들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었습니다. 밀이나 보리가 재배되었고 소나 돼지, 양, 염소가 인류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곳에 머물며 식량을 생산하는 생활은 이후 이어질 도시화의 밑거름이 되었죠. 약 1만 1천 년 전 예리코 약 9천 년 전 차탈회위크 약 6천 년 전 우루크처럼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거주하는 정착촌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들이 모두 도시로 발전했던 건 아닙니다. 훌륭한 잠재력을 가졌던 예리코나 차탈회위크는 수만 명이 밀집해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진 못했는데요. 어쩌면 그곳이 너무 살기 좋은 땅이었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도처에서 구할 수 있었다면 굳이 비좁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겠죠.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달랐습니다. 한때는 이 지역도 비옥한 습지대가 넓게 퍼져 있었는데요. 약 5천 년 전 기온이 또 한번 올라 습지대가 말라붙으면서 이 일대에 넓게 퍼져살던 농부들은 곤란을 겪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물을 찾아 우루크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려면 이 인구를 부양할 만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야 했는데요. 우루크인들은 대형 관개시설을 구축함으로써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물을 대는 지혜를 발휘했죠. 덕분에 강 주변의 광활한 공간을 경작지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몰려드는 인구와 넉넉한 식량 우루크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인구를 빨아들이며 수만 명이 밀집해 살아가는 방대한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최초의 도시가 탄생한 겁니다. '도시'라는 발명품은 무척 성공적이어서요. 우루크인들처럼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했던 다른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도 곧 우루크를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십여 개의 도시들이 새로 생겨나 서로 교류하기 시작했죠. 이는 놀라운 변화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이 비좁은 도시공간 안에 모여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또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역사를 움직이는 각종 혁명과 혁신이 생겨났던 겁니다. 가령 메소포타미아의 장인들은 바퀴 달린 물레를 개발한 덕분에 도자기를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었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물레를 돌리던 바퀴를 보고 수레를 끄는 데 이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죠. 그들은 바퀴 달린 수레에 도자기를 실어 다른 지역으로 가져가 팔았습니다. 또 그러자, 교역을 돕기 위한 화폐나 문자가 발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는 말하자면 자연의 예측 불가능함에 맞서 '인간만의 예측 가능한 삶'을 탐색하는 전초기지였고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혁신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연쇄적인 혁신이 일어났던 공간들을 묶어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도시들 간 교역을 통해 또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처럼 도시들을 거느리는 국가가 출현하면서 '도시'라는 발명품 또한 사방으로 전파되었죠. 수많은 도시들이 생겨났습니다. 바빌론은 하늘까지 닿을 듯한 탑을 쌓아올렸고 알렉산드리아는 전 세계의 지식을 총망라한 도서관을 지었습니다. 그건 인간의 기술과 지식을 과시하려는 욕망이었습니다. 각자의 시대에 각자의 지역에서 방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로마와 장안, 바그다드 등은 세련된 도시문화의 진원지였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살면서 미식이나 문학, 극장 같은 문화를 발달시켰습니다. 그런가 하면 리스본과 암스테르담은 전 세계의 도시를 하나의 상업망으로 연결함으로써 지구적 규모의 경제 시스템을 완성했죠. 각각의 도시들은 어머니 도시의 꿈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연장하고 확장해나갔던 겁니다. 이 연장과 확장의 기록을 '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겁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는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주변지역에서 생산된 식량만으로 도시 인구를 부양하기엔 엄연한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1500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들은 베이징, 비자야나가르, 카이로, 항저우, 타브리즈, 가우다, 이스탄불, 파리 순이었는데요. 가장 인구가 많았던 베이징조차 약 67만 명으로 100만 명이 넘지 않았죠.
도시가 수만, 수십만 명이 밀집해 살아가는 형태를 넘어 수백만 명 이상이 운집한 형태, 즉 '메트로폴리스'로 발전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18세기 중반 바로 이곳 런던에서 그 돌파구가 마련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체제가 갖춰지면서 도시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런던은 전례없는 속도로 주변의 인구를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19세기 초까지 100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메트로폴리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죠 19세기 초 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는 도시는 런던과 베이징 정도가 전부였는데요. 그런데 19세기 말이 되었을 때 이 목록에는 뉴욕과 파리, 시카고, 도쿄, 상트페테르부르크, 맨체스터, 버밍엄, 모스크바 등이 추가되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비율도 폭발적으로 늘어서요. 19세기 초까지 도시 인구는 세계 인구의 3퍼센트에 불과했지만 100년 뒤 이 비율은 20퍼센트까지 커졌고 다시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50퍼센트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중반까지 약 70퍼센트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죠. 오늘 우리는 지난 6천 년 동안 진행되어 오던 도시화의 완성을 목도하고 있는 겁니다. 도시는 변화무쌍한 자연에 맞서 인간만의 예측가능한 삶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발명품이었고 또 도시에서 출발한 혁신은 역사를 이끈 주요한 힘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도시가 갖고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는 주변 지역으로부터 수많은 인구를 빨아들이는 구심력이 되기도 했죠. 대부분의 인류가 도시에 사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요? 물론 장밋빛 전망만이 가득하진 않을 겁니다. 도시는 종종 범죄나 전염병의 온상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고 있는 건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매력이 도시에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도시에 삽니다. 도시는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