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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튀김은 왜 맛있는 걸까요?

by 팔딴 2023. 6. 12.

튀김요리

여러분은 '튀김' 좋아하시나요? 기름에서 갓 꺼낸 따끈한 튀김을 한 입 베어물 때 입 밖으로 울려퍼지는 경쾌한 소리. 단언컨대 바삭거리는 소리는 우리가 튀김을 좋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2004년 영국에서 진행된 한 심리학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약 200개의 감자칩을 나눠준 뒤 하나씩 깨물어보면서 각각의 질감과 신선도를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감자칩을 씹을 때 나는 소리를 오직 헤드폰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는 건데요. 그 소리는 연구진에 의해 바삭거림에 해당하는 주파수가 크거나 작게 조작되어 있었죠. 물론 참가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실험에 임했구요. 바삭거리는 소리에 따라 감자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흥미롭습니다. 씹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가 작게 났을 때보다 크게 났을 때 참가자들은 그 감자칩을 더 바삭거리고 신선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이 먹은 감자칩들은 소리를 제외하면 맛도, 모양도, 질감도, 신선도도 모두 같은 것이었는데 말이죠. 바삭거리는 소리가 맛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실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바삭거리는 소리를 좋아하는 걸까요?

 

바삭거리는 소리의 매력

바삭거리는 소리는 어떻게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는 걸까요? 바삭거리는 소리도 '맛'입니다. 흔히 맛에 대한 판단은 혀의 일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만약 우리가 눈을 가리고 코를 막으면 우리는 먹는 것이 사과인지 양파인지조차 쉽게 구별하지 못할 겁니다. 사과와 양파는 둘 다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맛을 갖고 있고 비슷하게 아삭거리기 때문이죠. 여기서 둘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냄새'입니다. 리가 무언가를 먹을 때 혀에 있는 미각 수용체에서는 단맛과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5가지 맛이 인식됩니다. 한편 치아로 음식물을 분쇄할 때 방출되는 냄새 분자들은 후각 통로를 통해 후각 수용체로 올라가는데 여기서는 무려 1조 개에 달하는 서로 다른 냄새들이 분별되죠. 그래서 미각 수용체에서 똑같이 단맛과 신맛을 느낀다 해도 후각 수용체에서 어떤 냄새를 맡느냐에 따라 사과의 맛이 되기도 하고 양파의 맛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감각들도 맛에 대한 인식에 일정한 영향을 끼칩니다. 가령 우리는 핫초코가 오렌지색 컵에 담겨 있으면 더 맛있게 느끼고 가벼운 식기보다는 묵직한 식기를 이용할 때 음식의 맛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죠. 또 먹을 때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 단맛이 더 잘 느껴지고 고음의 음악을 들으면 신맛이 더 잘 느껴집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감자칩 실험도 그렇구요. 따라서 맛을 본다는 것은 미각뿐 아니라 양한 감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다감각 활동'입니다. 각 감각기관에서 지각된 정보들이 뇌로 보내지면 뇌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지식을 바탕으로 이 감각정보들을 평가하죠. 그래서 뇌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합니다. 맛을 보는 데 이처럼 다양한 감각들이 이용되는 것은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 오랫동안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음식들이 위생적으로 처리되어 신선하게 공급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이 많지 않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우리는 먹을 만한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직접 찾아야 했고 상하거나 오염된 게 무엇인지를 또 구별할 수 있어야 했죠. 따라서 뇌는 최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야 했습니다. 색을 식별해 그것이 잘 익었는지 아닌지를 추측했고 직접 만져보거나 한 입 베어물어 그것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가늠해보았죠. 부분의 과일과 채소는 신선할수록 단단하고 그래서 먹을 때 시끄러운 소리가 납니다.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먹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뇌는 먹고 있는 것에 쓸만한 영양소가 더 많다고 판단해 도파민을 분비합니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바삭거리는 소리에 대한 선호는 신선함뿐 아니라 우리가 지방을 좋아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지방은 탄수화물, 단백질과 함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3대 영양소 중 하납니다. 그중에서도 탄수화물과 지방은 우리가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탄수화물과 지방의 존재를 암시하는 정보를 포착할 때 뇌는 도파민을 훨씬 강력하게 분비하죠. 우리가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맛은 탄수화물의 존재를 암시하는 미각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방은 미각 정보를 통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방도 고유의 맛이 있다는 연구들이 최근 나오고 있긴 하지만 지방맛은 단맛이나 짠맛 등에 쉽게 가려집니다. 그래서 지방이 든 음식을 찾으려면 다른 감각 정보에 더 많이 의존해야 했는데요. 바삭거리는 소리가 바로 지방의 존재를 암시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겁니다. 인류에게 가장 오랫동안 지방 공급원으로 기능했던 것은 '곤충'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만 년 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과일과 채소를 주로 먹으면서도 종종 곤충을 먹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곤충은 씹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가 나죠. 또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 년 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바삭거리는 음식의 목록에 '구운 고기'를 추가했습니다. 고기를 불에 구우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며 새로운 풍미가 생기고 고기 표면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질감이 단단해집니다. 특히 지방이 많은 껍데기일수록 바삭해지죠. 그러니 곤충을 먹든 구운 고기를 먹든 바삭거리는 음식들은 지방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만 년 전에 등장한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바삭거리는 소리를 훨씬 극대화한 고지방 음식을 만들어냄으로써 바삭거림의 역사에 방점을 찍습니다. 그 주인공이 된 음식이 바로, '튀김'입니다. 어떤 식재료든 밀가루 반죽을 묻혀 170℃ 정도로 데운 기름에 담그면 밀가루 반죽이 기름의 열에 의해 구워지며 바삭해지는데요. 이와 함께 반죽 속에 들어있던 수분들이 증발하면서 반죽 내부에 수많은 공기 구멍들을 만듭니다. 그래서 나중에 완성된 튀김을 씹을 때 이 구멍들이 연쇄적으로 파열되면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극대화되죠. 우리는 바삭거리는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튀김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튀김이 거꾸로 우리로 하여금 바삭거리는 소리에 더 강한 선호를 갖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전분을 기름에 튀기는 것이다보니 튀김은 고지방인 동시에 고탄수화물 음식이기도 한데요. 고탄수화물-고지방 조합이 뇌에서는 도파민을 분비하는 일종의 치트키로 기능합니다. 우리 뇌는 탄수화물을 감지할 때 누르는 버튼과 지방을 감지할 때 누르는 버튼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튀김을 먹는다는 것은 두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셈입니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는 튀김처럼 고탄수화물이면서도 고지방인 음식은 거의 없기 때문에 김은 역사상 인류가 먹어왔던 그 어떤 음식보다 강렬한 도파민 파티를 만들죠. 궁극의 바삭거림이 주는 궁극의 쾌락 누가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 누가 바삭거리는 소리를 싫어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