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기 전에 잔을 들어 건배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잔을 부딪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관습입니다. 여러분은 왜 그렇게 하는지 궁금했던 적 있으셨나요? 여기에는 여러 설명들이 있지만 가장 믿을 만한 설명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신께 무언가를 기원하면서 그 대가로 순수한 액체를 바치던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에도 우리는 건배를 하기 전에 잔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건강이나 행운, 행복을 비는 기도문을 읊습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간단하게 "토스트!"하고 외치기도 하죠. 그런데 왜 '토스트'일까요? 우리가 아는 토스트는 열을 이용해 노릇노릇하게 구운 빵입니다. 구운 빵이 누군가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1. 오래된 빵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아침식사로 토스트를 먹습니다. 토스트 자체만으로는 맛이 밋밋하기 때문에 버터나 잼을 바르기도 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재료를 조합해 올리기도 하죠.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어 아침처럼 바쁠 때 커피 한 잔과 함께 후딱 먹어 치우기에 제 격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토스트를 아침식사로 먹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관습이죠. 원래 토스트는 오래된 빵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에서 출발했습니다. 곡물 가루 단계에서 전분 입자는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어 매우 단단합니다. 그런데 물과 섞어 섭씨 60도 정도로 가열하면 전분 입자들이 수분을 흡수하면서 배열이 느슨해져 부드러워지죠. 이것을 '호화'라고 하는데요. 갓 구운 빵이 딱 이런 상태입니다. 호화 상태에서는 전분 입자 사이로 소화효소가 침투하기 쉬워서 소화도 잘 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전분 입자들은 흡수했던 수분을 뱉어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규칙적인 배열로 되돌아갑니다. 이것을 '노화'라고 합니다. 구운지 오랜 시간이 지난 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죠. 그래서 오래된 빵은 조밀해진 전분 입자들의 배열 때문에 딱딱해져서 먹기도 힘들 뿐 아니라 소화도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과 달리 언제나 식량이 귀했던 과거에는 빵이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해서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오래된 빵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요. 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경의 한 로마인 미식가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요리책에는, 빵을 우유에 담근 뒤 기름에 튀기듯 굽는 레시피가 실려 있죠. 이것은 타당한 방법이었는데요. 이미 노화가 진행되었다 해도 빵에 수분을 첨가한 뒤 섭씨 60도로 데우면 빵 속 전분이 호화 상태로 되돌아가면서 갓 구웠을 때처럼 부드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굽는 온도가 140도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전분이 캐러멜화되는 동시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빵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바삭바삭해지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풍미도 추가되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빵 속 수분이 날아가버릴 수 있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꿀처럼 달콤한 소스를 뿌려서 냈습니다. 요리책의 저자는 이 음식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고 그저 또 다른 달콤한 요리라는 의미에서 '알리테르 둘키아'라고만 적어 놓았는데요. 이 최초의 토스트는 오래된 빵을 활용하는 가장 오래된 원칙들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빵을 섭씨 60도 이상으로 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빵을 굽기 전이나 구운 후에 수분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구운 빵'과 '수분의 첨가'라는 이 두 가지 원칙만 지킬 수 있으면 죽은 빵도 되살릴 수 있었죠. 그래서 이 원칙들은 한 쌍으로 묶여서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2. 인식망
중세에 이르러 알리테르 둘키아의 후손들은 '수파(suppa)'라는 라틴어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프랑스로 전해져 수프(soupe)가 되었고 영국으로 전해져 소프(sop)가 되죠 수파, 수프, 그리고 소프는 빵을 액체에 적셔서 굽거나 일단 굽고 나서 액체에 적시는 음식들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첨가되는 수분이 꼭 우유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빵을 계란물에 적신 뒤 기름에 튀기듯 굽는 버전도 있었고요. 일단 오븐에 빵을 구운 뒤 뭉근히 끓여낸 육수와 조합하는 버전도 있었죠. 오늘날 프랑스의 '수프 알 로뇽'이나 이탈리아의 '리볼리타' 같은 음식이 바로 이 버전의 후손들입니다. 소프의 여러 변주들 중에는 와인과 어울리는 버전도 있었는데요. 중세 유럽의 의사들은 물이 위를 차게 하기 때문에 식사를 할 때는 물보다 와인을 마시는 게 더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럽인의 식탁에는 와인이나 맥주 같은 알코올 음료를 곁들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하지만 과거에는 술을 보관하는 기술이 오늘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에 술이 쉽게 시어버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술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해서 애써 만든 술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이는 노화되어 딱딱해진 빵을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였죠. 그래서 이런 술은 향신료나 과일을 넣고 한 번 끓여서 좋지 못한 향미를 개선시켰는데요. 그리고는 되직하게 만들어서 토스트 위에 소스처럼 붓기도 했고 아니면 술에 토스트를 띄워서 마시기도 했죠. 14세기 말 영국인 제프리 초서가 펴낸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이러한 관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흰 수염을 기르고 다혈질이었던 남자가 아침마다 와인과 조합한 소프를 먹는 걸 좋아했다고 되어 있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요. 17세기 초, 같은 영국인인 셰익스피어가 쓴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보면 분명히 같은 음식을 묘사한 듯한데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표현이 등장합니다. '토스트'입니다. 그건 사소한 듯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튀세르는 세상을 우리의 언어로 포획된 세상과 포획되지 않은 세상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언어로 포획되지 않은 세상을 구체적인 이름으로 부름으로써(호명), 우리의 인식망 안으로 포획한다고 주장했죠. 토스트는 '토스트'라는 부름이 있기 전까지는 그저 '구운 빵'이라는 현상으로서, 즉 언어로 포획되지 않은 세상 속에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구운 빵을 '토스트'라고 부름으로써 비로소 인식 가능한 무언가가 되었죠. 이제 영국인들은 소프와 토스트를 구별해서 인식하기 시작했고 토스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비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건배사'로서 토스트의 등장입니다. 토스트는 술에 띄우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술의 신맛과 쿰쿰한 향뿐 아니라 첨가한 향신료나 과일의 향미도 흡수하기 때문에 강렬한 존재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17세기의 영국인들은 '토스트'라는 단어를 구운 빵을 가리키는 용도 외에 '어떤 장소에서 핵심이 되는 존재'를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하기 시작했죠. 특히 술자리에서 오랜 전통에 따라 누군가의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를 할 때 기원의 대상이 된 사람을 '토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영어권에서 잔을 들어 건배하는 것을 '토스트'라고 부르거나 건배할 때 '토스트!'하고 외치는 게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죠.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축배(toast)를 들자♬ ♬충성스러운 메인 사람들아, 모두 노래를 부르자♬ ♬그 모든 행복한 시간을 위하여!♬ ♬무심한 날들을 위하여!♬
3. 토스트의 가능성
'건배사'로서의 토스트가 탄생했던 17세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구운 빵'으로서의 토스트가 알코올 음료와의 결별을 준비하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즈음의 유럽 사회에서는 알코올 음료의 과다한 섭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인들이 식사 때 알코올 음료를 대신할 수 있는 음료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각각 전해지고 있었던 커피나 홍차가 그 주인공이었죠. 당시 유럽의 의사들은 카페인 음료들이 술만큼은 아니어도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신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코올 음료의 폐해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카페인 음료를 그 대체재로 내세울 수 있었죠. 그리고 그 결과 17세기 중반부터 유럽 상류층의 식탁에는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으레 놓여지곤 했던 와인병이나 맥주병 대신 찻주전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는 '소프'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동맹을 형성했던 토스트와 알코올 음료의 관계에도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토스트는 입지를 넓혀가던 카페인 음료와 어울리는 일이 점점 많아졌고 알코올의 시간이었던 저녁 대신 카페인의 시간이었던 아침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변화해나갔죠. 그리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빵이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어 저렴하게 공급되기 시작하고 20세기 초까지 현대화된 조리도구들이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토스트를 아침식사로 먹는 관습이 보편화되었습니다. 토스트는 원래 오래된 빵을 활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매일 부드러운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토스트를 만듭니다. 순전히 맛과 식감을 위해서죠. 토스트는 필요에 의한 수단에서 욕망의 대상으로 변화함으로써 전통적으로 토스트를 즐겨왔던 서구 사회를 넘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나갔고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을 스프레드로 바르고 무엇을 토핑으로 올릴 거냐고요. 그리고 각 나라의 문화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갈색 캔버스 위에는 다양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가령 영국인들은 베이크드 빈스를 계란 후라이와 함께 토스트 위에 올려 먹는 걸 좋아합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코코넛밀크와 계란, 설탕을 섞어서 만든 '카야'라는 잼을 바르고요. 스웨덴에서는 새우 샐러드인 스카겐로라를 얹어서 먹습니다. 가나에서는 새우와 건어물을 이용해서 매콤하게 만든 시토 페이스트를 활용하고 일본에서는 오구라 단팥을 바른 뒤 그 위에 정사각형으로 자른 버터를 올리죠. 최근 전 세계 토스트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숲 속의 버터'라 불리는 아보카도입니다. 씨앗을 분리해낸 아보카도를 짓이겨서 되직하게 만든 뒤 이걸 토스트에 발라서 먹죠. 아보카도 토스트는 2015년을 기점으로 관심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현재까지도 가장 뜨거운 토스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토스트는 이처럼 다양하게 변주되며 전 세계의 아침 식탁에 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중에서 어떤 토스트로 여러분의 아침을 열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