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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 김치.

by 팔딴 2023. 6. 2.

김치, 천의 얼굴

김치의 다양함

오늘은 김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김치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백김치, 파김치, 고추냉이김치, 깍두기 등 배추에 소금만으로 절이고 담근 소박한 김치부터 육고기와 온갖 해물, 형형색색의 고명과 양념이 더해진 반가의 김치까지 참으로 여러 가지의 김치가 존재하고 그 김치들 또한 지역마다 그 색채가 다르고 맛도 풍미도 다릅니다. 김치라는 이름으로 정말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와 맛을 담고 있는 것이죠.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곁들이는 설렁설렁 담근 배추겉절이는 물론이고, 온갖 정성을 다해 담근 반지도 절묘한 맛과 멋을 보여줍니다. 김치 속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습니다. 김치의 구성재료를 선택하고 만드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계절에 맞게 그 맛과 여운을 담으려는 정성이 담겨 있는 것이죠. 김치의 소재는 예부터 겨울을 위해 봄부터 차곡차곡 준비하는 계절의 시간표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차분하게 은유적으로 계절을 해석하는 우리 선조들의 높은 미의식이 담긴 음식이 바로 김치입니다.

 

김치맛의 정체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의 맛을 표현합니다. 코 끝을 아련하게 찌르는 청국장의 구수함, 갖가지 나물과  고명, 참기름으로 버무린 잡채의 달짝지근함, 침샘을 자극하고 입맛을 돋구는 김치찌개의 알싸함, 텁텁한 입안에 기름기를 둘러주는 녹두전과 육전의 풍부함, 매콤세콤 입맛을 살려주는 도토리묵무침의 쌉쌀함. 한국의 음식은 몇 가지 표현으로는 담을 수 없는 풍부함과 다채로움이 있습니다. 한국의 음식은 왜 이토록 맛있고 자극적이며, 풍부하고 다채로운 걸까요? 사실 우리는 음식이  얼마나 절묘하게 만들어지는지와는 상관없이, 음식의 ‘맛’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혀로 느끼는 맛의 개념, 그 이상의 ‘그 밖에 다른 모든 것'의 역할을 이해해야 합니다. 영국의 한 요리전문가는 “식탁의 즐거움은 마음에 있지, 입에 있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우리의 여러 감각들이 상호작용한다는 걸 알 수 있죠. 특히 맛의 결정과정은 좀 더 복잡합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특정 ‘맛’을 결정하기 위해 향기로운 냄새, 맛, 식감, 색, 소리 등의 정보를 즉각적으로 결합시킵니다. 이렇게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수집된 정보는 기억과 함께 예상보다 훨씬 많이 ‘맛’에 기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가 뇌에서 한데 어우러져 특정한 맛의 개념을 만들어 내죠. 한국인의 발효음식은 뇌 속의 ‘맛’ 정보들의 작은 틈새에 파고들어 맛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키면서 풍성하고 역동적으로 만들어냅니다. 김치는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김치를 담그는 날에는 온 가족, 동네가 삼삼오오 수다와 웃음으로 떠들썩하고, 빨갛게 버무려진 김치를 먹는 꼬맹 이의 콧등 위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힙니다. 우리는 공깃밥 한 그릇에 통통한 총각김치만으로 배를 채울 수 있고, 중요한 손님을 위해 정갈하게 준비한 저녁식사에는 다양한 김치들이 빛을 발합니다.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김치는 다양한 모습으로 과감히 변신하죠. 김치는 때론 한국인의 끼니와 함께 하는 가장 소박한 반찬이지만, 가장 사치스러운 연회에서도 김치는 빠질 수 없는 반찬입니다. 생활의 소박함 속에서 맛의 화려함을 선사하는 음식이 바로 김치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먹을 거리가 풍성해져 예전보다 김치를 훨씬 덜 먹습니다. 맞벌이가 많아지고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면서 할머니나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요리를 배우거나 집안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전수받는 문화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전통은 집안마다 개별 성원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면이 강한데 음식문화는 특히 그런 성격이 강합니다. 어깨너머로 어른들이 음식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전수돼 왔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정형화된 요리법은 다양한 모습을 담을 수 없습니다. 김치는 한국인의 일생에서 주요한 의례에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생활 곳곳에서도 빠질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다.

 

한국의 김치문화

2013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가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김장문화에 대해서 유네스코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김치는 한국 고유의 향신료와 해산물로 양념하여 발효한 한국적 방식의 채소 저장 식품을 일컫는데,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760년 이전에도 한국인의 식단에는 김치가 있었다고 한다. 김치는 계층과 지역적 차이를 떠나 한국인의 식사에 필수적이다. 밥과 김치는 가장 소박한 끼니이지만, 가장 사치스러운 연회에서도 김치는 빠질 수 없는 반찬이다. 김장에 쓰이는 특별한 방법과 재료는 세대를 통해 전승되는 중요한 가족 유산이다. 가장 전형적인 전승 방법은 부계 가정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는 것이다. 가정마다 특수한 김장 방법을 배우는 것은 새로 결혼한 며느리에게 중요한 문화적 적응이다. 김장을 잘 담고 김치의 참맛을 아는 미각을 갖는 것은 한국 문화와 생활방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게 여겨진다. 한국에서 김장을 위한 전통적 친족 관계와 협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문화재청이 2011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73.8%의 한국인이 동거하거나 또는 동거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 및 기타 지인과 함께 정기적으로 김장을 담는다고 답했다. 김장, 더 넓게 '김치를 담그는 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김장은 한국의 문제 체계인 한글이나 태극기와 비교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김치를 담그는 날은 온 가족, 동네가 떠들썩하고 김치가 빨갛게 버무려지면 옆에서 있던 꼬맹이들도 간을 봐주는 사람이 됩니다. 막 버무려져 생생한 매운맛에 콧등 위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면 혀를 쏙 빼고 학학거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밥을 먹기 시작한 아기도 김치가 먹고 싶어 밥상 옆에 앉으면 할머니가 물에 헹궈 작게 찢어 수저 위에 올려주시죠. 밥상을 차릴 때 밥과 국, 김치와 장, 반찬들이 무리 지어 상 위에 오릅니다. 밥을 먹기 전 김치 국물을 조금 떠먹거나 장을 조금 떠 혀끝에 미리 자극을 주고 밥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하도록 알리는 중간중간 소화를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마무리로 김칫국물을 먹기도 했고 숭늉으로 입안을 정리하고 소화를 도왔습니다. 김치는 그 자체가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며, 김치 빠진 한국인의 밥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느 집에 갔을 때 식탁에 오르는 김치 하나만으로도 어느 지역 사람인지 취향이나 맛에 대한 기호 등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햇김치나 막 버무린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치가 곰삭아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식감을 중시해서 씹는 맛이 있는 깍두기나 총각무 김치를 선호하기도 하죠. 좀 더 강렬한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파김치나 고들빼기김치, 갓김치를 선호하고 김치의 향을 즐기려는 사람은 미나리김치나 고수김치를 즐깁니다. 가벼운 아삭거리는 식감을 원하면 오이소박이나 열무김치를 담가 먹습니다. 발효음식은 익어가며 맛이 변하고 담글 때부터 매운 정도, 염도, 맛의 조화에 신경을 섬세하게 써야 하므로 김치를 담그는 주부는 간을 보며 조절합니다. 아이들도 이 과정에서 참여하며 김치의 맛에 눈을 뜨게 된다. 어린아이들도 맵고 낯선 김치 맛을 어른과 함께 보며 매운맛을 이기고 뒤에 느껴지는 감칠맛을 알게 됐을 때 어른들의 칭찬과 격려 속에 김치가 맛있는 음식임을 알게 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불현듯 밥이 먹고 싶고 김치 버무리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갓 지은 밥에 김치 한 가닥 찢어 밥에 걸쳐 먹는 맛을 잊을 수가 없죠. 김치는 한국인의 입맛에 내재화된 맛의 근원이자 아련한 고향의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