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여지없이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12~1790년)와 국부론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국부론의 내용에는 전체의 주제를 가로지르는 표현 하나가 있는데요. '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이론입니다. 사실 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국부론 전체에서 딱 한번 밖에 인용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국부론이 후세에 워낙 강력한 인상을 미쳤기 때문에 책 전체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이해하기 쉬운 이론으로 인용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국부론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우리는 왜 고전경제학으로써의 국부론이 어떤 의미이며, 왜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애덤 스미스가 어떤 사람이고 왜 이렇게 경제학에서 중요한 사람인지, 아울러 애덤 스미스은 '현재 경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애덤 스미스는 반드시 알아야 할 인물이죠. 경제학의 3대 저서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케인즈의 '일반론', 칼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꼽죠. 이 3대 경제학 저서 중에서도 반드시 딱 하나만 읽어봐야 한다면 단연 애덤스미스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의외일지는 모르겠지만, '경제학'은 오래된 학문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과 사회사상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문학은 철학이죠. 철학은 수천년의 시간동안 오래 연구되어온 학문이지만, 경제학의 기본 토대는 애덤 스미스가 1776년에 국부론을 출간하면서 비로소 경제학의 개념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시 시대에서는 이 국부론이 출시되었을 때 경제학이 아닌 철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책이었습니다. 1776년 시기, 애덤 스미스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도덕감정론'을 편찬한 흄을 비롯하여 다수의 철학자들이 모여 철학을 연구했다고 하죠. 이들을 후세엔 '애든버러학파'라고 부릅니다. 18세기 동시대에 활동하던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정치학을 연구했던 프랑스의 루소(1712~1778), 경제학을 연구한 영국의 애덤 스미스(1723~1790), 철학자인 독일 칸트(1724~1804)가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정약용이 괴나리 봇짐을 메고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시절이었죠. 애덤 스미스는 이 국부론을 철학을 연구하는 논문으로 발표했지만 후대의 학자들이 국부론은 '철학의 범주로 포함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라고 판단하여 경제학이라 명명하게 된 겁니다. 이 국부론이 기존의 철학의 개념과 다르다고 봤던 이유는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식에 크게 두가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선 첫번째, 인간을 상정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과 성질을 기존의 철학에서 바라는 그것과 다르다는 의미이죠. 가령 철학이나 신학의 경우에는 인간을 '이타적인 존재'로 봤습니다. 즉 인간은 다른 인간을 위해 배려하고 희생하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존재론적 관점인 것이죠. 그렇지만 애덤 스미스는 인간을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로써 바라봤습니다. 이 국부론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렇게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후대에 다르게 해석되었습니다. 두번째 차이는 인간의 도덕적 가치와 내면의 세계화같은, 추상적이면서 수치화할 수 없는 정신적 영역을 정량적 방식으로 수치화하는 양적연구를 추구한 겁니다. 그래서 기존의 철학적 연구와는 완전히 다른 관전에서 인간을 새롭게 상정화하고 수치화하는 연구를 철학이 아닌 독자적인 학문의 영역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시작된 것이 경제학이고 이 경제학을 우리는 고전경제학이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이 고전경제학의 시작을 연 인물이 바로 애덤 스미스입니다. 물론 후세의 경제학에서는 고전경제학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고전경제학에서 다루지 않는 인간의 비합리성이라던지, 베블린같은 학자가 제시한 인간의 과시소비 같은 설명할 수 없는 단점들이 있습니다. 즉 경제영역에서 수치화할 수 없는 취약점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학이란 거대한 틀을 만든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틀을 바탕으로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고 주장한 '세이(Jean B. Say)'라든가, 절대우위론을 뛰어넘는 리카르도(David Ricardo)의 비교이론이라던가 하는 고전경제학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고전경제학의 시작을 연 애덤 스미스는 도대체 무엇에 주목했던 걸까요? 우선 이 국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진짜 제목을 이해해야 합니다.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국가 부(副)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고찰
책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애덤 스미스가 이 연구를 통해 진정으로 탐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담스미스가 진정으로 탐구하고자 했던 것은바로 국가의 부의 원천은 무엇이며, 그것이 형성되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하는 고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 중세시대에는 국가의 부의 원천을 토지에서 봤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땅에서 100만큼의 쌀을 생산했을 때 그 생산된 쌀은 노동자가 아닌 토지가 생산했다는 보는 견해입니다. 즉, 그렇게 생산된 쌀은 노동자가 아닌 지주가 소유하는 개념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중농주의자의 관점입니다. 그러다가 유럽의 대륙탐험을 통해 신대륙들이 발견되게 되죠. 탐험가들이 발견한 신대륙에는 당시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자원들이 많았겠죠.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금이나 은과 같은 광물자원, 설탕, 담배, 향신료, 후추, 커피 등의 식재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무역이 발달하게 됩니다. 그렇게 근세시대에 들어서면서 부의 원천으로 화폐(금/은)가 급부상하게 됩니다. 이것이 중상주의자들이죠. 당시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에도 실학이 있었습니다. 유형원(균전제), 이익(한전제), 정약용(여전제) 등 중농주의 실학파와 화폐개혁과 상공업개혁론을 주장한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와 같은 중상주의 실학파들이 대표적이죠. 이 2개의 학파는 똑같은 실학자이지만 그 시대나 국부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 대안도 완전히 다르고, 절약이나 소비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랐습니다. 중상학자들을 절약의 역설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이 가난한 이유는 소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을 소비하지 않으니 비단이 생산되지 않으며, 그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다고 본거죠. 즉, 소비를 부의 원천으로 바라봅니다. 우물물이 마르는 이유는 아무도 우물을 파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반면에 정약용은 절약을 강조합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세와 금세를 거쳐 산업혁명이 터진 1760년에 애덤 스미스는 40세라는 인생의 전성기에 산업혁명을 목격하게 됩니다. 산업혁명 이후에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게 되는데 귀족같은 사회지도층을 대신하는 새로운 계급층인 부르주아입니다. 사실 귀족계급의 본질은 선행과 베푸는 이타적인 풍습을 보이는 등의 도덕의 원리가 작용하는 반면 부르주아 계급층의 본질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본인의 이익(私益)을 위해 다른 경제적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을 통해 공익(公益)으로 전환하는 순기능이 작용한 겁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 점에 주목합니다. 새로운 계층인 부르주아들이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돈을 벌고 그 번 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거나 다른 부의 축적을 위해 다른 노동자를 고용하는 등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는 모습을 보며 국가의 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축은 노동자이며 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과 축적된 부를 소비함으로써 국가의 부가 형성된다고 본겁니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과다한 부의 축적과 시장에서 독점이 소외계층등을 양산하게 될 위험에 대해 국가가 중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즉, 축구 경기가 공정한 룰에서 공정하게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하게 중재하고 심판하는 기능도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이것이 국부론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인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