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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각객의 달콤함, 도넛

by 팔딴 2023. 6. 18.

6세기 네덜란드 지역에 살던 게르만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지나 새해로 넘어가는 기간에 황금빛 도는 튀김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나운 여신 페르히타가 배를 갈라 그 안에 지푸라기와 벽돌을 가득 채운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튀김빵을 먹어 배에 기름칠을 하면 칼이 자꾸 미끄러져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네덜란드인들은 이 음식을 올리볼렌이라고 불렀습니다. 올리볼렌은 '기름'을 의미하는 올리(olie)에 '공'을 의미하는 볼(bol)이 붙은 이름인데요. 즉 '기름에 튀긴 공'이라는 뜻입니다. 이 올리볼렌으로부터 현대의 도넛이 유래했습니다.

 

1. 도넛의 탄생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도넛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넛 하면 떠올리는 모양은 이런 모양이죠.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링 모양인데요. 공 모양이었던 올리볼렌은 어떻게 이런 모양의 도넛이 되었을까요? 올리볼렌을 튀길 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겉이 노릇하게 익어 건져도 정작 속은 안 익는 경우가 많았던 건데요.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아이오 IO'

열이 겉에서 속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겉과 속의 익는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었죠.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은 과일이나 견과류처럼 꼭 익히지 않아도 되는 재료들로 속을 채웠습니다. 그러면 속이 덜 익어도 큰 타격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게 '도넛'이라는 이름의 유래로 이어졌다고 보기도 합니다. 19세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올리볼렌을 영어로 번역하며 '도넛'이 되었다는 건데요. 이 가설에 따르면 도(dough)는 반죽을 넛(nut)은 반죽에 넣던 견과류를 의미합니다. 즉 도넛은 '견과류를 넣은 빵'이라는 의미가 되죠. 이후 도넛(doughnut)이라는 단어는 D.O.N.U.T 도넛(donut)으로 줄여서 쓰이기도 했고 오늘날에는 두 단어 모두 사용되고 있습니다.

 

2. 구멍

초창기 도넛에는 과일이나 견과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종류의 도넛을 찾아볼 수 있지만 원래 링 모양의 도넛은 없었습니다. 도넛에 구멍이 생긴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링도넛

사실 이것과 관련해 확실한 설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설명들은 바로 이 인물을 가리키고 있죠. 한센 그레고리(Hansen Gregory). 그는 미국인 선장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재료값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하고 누군가는 배를 조종하는 키에 걸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어쨌든 19세기 중반의 어느 시점에 한센은 링 모양의 도넛을 만들어냈고 19세기가 끝날 즈음 그것은 도넛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튀길 때 열이 겉과 속에 골고루 전해진다는 결정적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넛이 미국에서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제1차 세계대전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7년 4월 미국이 전쟁에 참전했을 때 훗날 '도넛걸'로 알려지게 되는 여성 자원봉사자들은 최전방에서 도넛을 튀겨 군인들에게 제공했는데요. 한동안 전투식량만 먹어야 했던 군인들에게 갓 구운 도넛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때문에 1919년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귀향 군인들은 도넛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죠. 1919년부터 목격되기 시작한 도넛 광고들은 '보병'을 의미하는 도우보이(doughboy)와 도넛(doughnut)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쟁 때 도넛이 어떻게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지를 상상하도록 이끌어 도넛 소비를 자극했던 겁니다. 여기에 1920년 아돌프 레빗(Adolph Levitt)이 최초의 도넛 기계를 발명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도넛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쌌기 때문에 미국인이 사랑하는 아침식사로 서서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3. 도넛 전문점

1934년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는 도넛을 커피에 적셔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1950년에 던킨이 등장하는 토대가 되는데요. 던킨이란 기업명 자체가 음식을 먹기 전에 '액체에 담가 적신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광고 등을 통해 반복해서 노출되면서 도넛과 커피의 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었죠. 1970년대에는 LA가 도넛 열풍의 중심지로 떠올랐는데요. 그건 당시 캄보디아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비극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입니다. 그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집권하면서 극단적인 공산주의 정책을 추진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을 학살하는 범죄를 저질렀죠. 이것을 '킬링필드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때 크메르루주로부터 도망친 캄보디아 난민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중 상당수가 로스앤젤레스, 즉 LA에 정착했습니다. 이 사람, 테드 느고이(Ted Ngoy)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1975년에 LA로 이주해 1977년 현지인으로부터 한 도넛 가게를 인수했고 가게 이름을 '크리스티 도넛'이라고 했죠. 크리스티는 아내의 미국 이름입니다. 느고이는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발휘하며 개업한 지 5년 만에 지점 수를 20개로 불렸는데요. 그의 성공은 이내 다른 이민자들의 모방을 불러왔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타국 생활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의 성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성공 전략이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도넛은 창업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초기에 몇 달만 기술을 익히면 된다는 장점이 있었죠. 그렇게 이민자들이 소유한 도넛 가게가 늘어나면서 LA 도넛은 새로운 활력을 얻었습니다. 이민자들은 그들 자신의 문화권에서 이용하던 새로운 식재료와 조리 방식을 접목했고 새로운 도넛을 만들어냈습니다. LA 도넛은 어느새 LA의 다문화 전통을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고 LA는 미국 도넛의 수도(首都)가 되었습니다.

 

4. 또 다른 길

네덜란드의 올리볼렌에서 미국의 도넛으로 커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아침식사이자 누군가에겐 위로였고 누군가에겐 꿈이었던 도넛 도넛은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동시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음식입니다. 2013년 도미니크 안셀 셰프는 크루아상과 도넛을 합친 크로넛을 선보임으로써 도넛의 또 다른 길을 제시하기도 했죠. 도넛은 개당 열량이 높아서 많이 먹으면 안 좋다고 하지만요. 유독 지치고 힘든 날 달달하고 쫀득한 도넛으로 스스로를 달래주는 것도 사는 낙이 아닐까요?